孫子 (The Art of War) 孫武 (Sun Wu)
The Art of War is an ancient Chinese military treatise attributed to Sun Tzu (also referred to as "Sun Wu" and "Sunzi"),[1] a high-ranking military general, strategist and tactician, and it was believed to have been compiled during the late Spring and Autumn period or early Warring States period.[2] The text is composed of 13 chapters, each of which is devoted to one aspect of warfare. It is commonly known to be the definitive work on military strategy and tactics of its time. It has been the most famous and influential of China's Seven Military Classics, and: "for the last two thousand years it remained the most important military treatise in Asia, where even the common people knew it by name."[3] It has had an influence on Eastern and Western military thinking, business tactics, legal strategy and beyond.
The book was first translated into the French language in 1772 by French Jesuit Jean Joseph Marie Amiot and a partial translation into English was attempted by British officer Everard Ferguson Calthrop in 1905. The first annotated English language translation was completed and published by Lionel Giles in 1910.[4] Leaders as diverse as Mao Zedong, General Vo Nguyen Giap, Baron Antoine-Henri Jomini, General Douglas MacArthur and leaders of Imperial Japan have drawn inspiration from the work.
Quotations
Chinese
Verses from the book occur in modern daily Chinese idioms and phrases, such as the last verse of Chapter 3:
故曰:知彼知己,百戰不殆;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
So it is said that if you know your enemies and know yourself, you can win a hundred battles without a single loss.
If you only know yourself, but not your opponent, you may win or may lose.
If you know neither yourself nor your enemy, you will always endanger yourself.
This has been more tersely interpreted and condensed into the Chinese modern proverb:
知己知彼,百戰不殆。
If you know both yourself and your enemy, you can win numerous (literally, "a hundred") battles without jeopardy.
English
Common examples can also be found in English use, such as verse 18 in Chapter 1:
兵者,詭道也。故能而示之不能,用而示之不用,近而示之遠,遠而示之近
All warfare is based on deception. Hence, when we are able to attack, we must seem unable; when using our forces, we must appear inactive; when we are near, we must make the enemy believe we are far away; when far away, we must make him believe we are near.
This has been abbreviated to its most basic form and condensed into the English modern proverb:
All warfare is based on deception.
Notes
[1]^ "Zi" (子; "Tzu" in Wade-Giles transliteration) was used as a suffix for the family name of a respectable man in ancient Chinese culture. It is a rough equivalent to "Sir" and is commonly translated into English as "Master".
[2]^ a b c Griffith, Samuel B. The Illustrated Art of War. 2005. Oxford University Press. p. 17, 141-143.
[3]^ Sawyer, Ralph D. The Seven Military Classics of Ancient China. New York: Basic Books. 2007. p. 149.
[4]^ a b Giles, Lionel The Art of War by Sun Tzu - Special Edition. Special Edition Books. 2007. p. 62.
http://en.wikipedia.org/wiki/The_Art_of_War
宋史 (송사) 428
宋史(송사)
脫脫[토크토] 등
卷四百二十八 列傳第一百八十七 道學二(程氏門人)
劉絢
劉絢字質夫,常山人。以蔭為壽安主簿、長子令,督公家逋賦,不假鞭撲而集。歲大旱,府遣吏視傷所,蠲財什二,絢力爭不得,封還其楬,請易之。富弼歎曰:「真縣令也。」元祐初,韓維薦其經明行修,為京兆府教授。王巖叟、朱光庭又薦為太學博士,卒於官。絢力學不倦,最明於《春秋》。程顥每為人言:「他人之學,敏則有矣,未易保也,若絢者,吾無疑焉。」
脫脫[토크토] 등
卷四百二十八 列傳第一百八十七 道學二(程氏門人)
劉絢
劉絢字質夫,常山人。以蔭為壽安主簿、長子令,督公家逋賦,不假鞭撲而集。歲大旱,府遣吏視傷所,蠲財什二,絢力爭不得,封還其楬,請易之。富弼歎曰:「真縣令也。」元祐初,韓維薦其經明行修,為京兆府教授。王巖叟、朱光庭又薦為太學博士,卒於官。絢力學不倦,最明於《春秋》。程顥每為人言:「他人之學,敏則有矣,未易保也,若絢者,吾無疑焉。」
宋史 (송사) 365
宋史(송사)
脫脫[토크토] 등
卷三百六十五 列傳第一百二十四
岳飛
维基百科條目︰ 岳飛岳飛字鵬舉,相州湯陰人。世力農。父和,能節食以濟饑者。有耕侵其地,割而與之;貰其財者不責償。飛生時,有大禽若鵠,飛鳴室上,因以為名。未彌月,河決內黃,水暴至,母姚抱飛坐甕中,衝濤及岸得免,人異之。
脫脫[토크토] 등
卷三百六十五 列傳第一百二十四
岳飛
维基百科條目︰ 岳飛岳飛字鵬舉,相州湯陰人。世力農。父和,能節食以濟饑者。有耕侵其地,割而與之;貰其財者不責償。飛生時,有大禽若鵠,飛鳴室上,因以為名。未彌月,河決內黃,水暴至,母姚抱飛坐甕中,衝濤及岸得免,人異之。
宋書 (송서) 沈約 (심약)
宋書(송서) 沈約(심약)
異名: 宋书(sòngshū)
구분: 역사서
저자: 심약(沈約)
시대: 중국 남북조시대(487년)
중국 남조(南朝) 송(宋,420∼479)의 정사(正史).
異名: 宋书(sòngshū)
구분: 역사서
저자: 심약(沈約)
시대: 중국 남북조시대(487년)
중국 남조(南朝) 송(宋,420∼479)의 정사(正史).
宋史 (송사) 脫脫 (토크토) 등
宋史(송사)
脫脫[토크토] 등
宋史(Sòngshǐ)
구분: 역사서
저자: 토크토[脫脫] 등
시대: 중국 원(元)
중국 원(元)나라 때의 사서(史書).
脫脫[토크토] 등
宋史(Sòngshǐ)
구분: 역사서
저자: 토크토[脫脫] 등
시대: 중국 원(元)
중국 원(元)나라 때의 사서(史書).
宋名臣言行錄 (송명신언행록) 朱熹 (주희)
宋名臣言行錄(송명신언행록) 朱熹(주희)
名臣言行錄(명신언행록). 송(宋)나라 때의 명신의 문집(文集). 전기(傳記)를 뽑아 엮은 책(冊). 주희(朱熹)가 엮었음. 전집(前集) 10권, 후집(後集) 14권, 후(後)에 이유무(李幼武)가 엮은 별집(別集). 외집(外執). 속집(續集) 등(等)이 나왔음.
名臣言行錄(명신언행록). 송(宋)나라 때의 명신의 문집(文集). 전기(傳記)를 뽑아 엮은 책(冊). 주희(朱熹)가 엮었음. 전집(前集) 10권, 후집(後集) 14권, 후(後)에 이유무(李幼武)가 엮은 별집(別集). 외집(外執). 속집(續集) 등(等)이 나왔음.
說苑 (설원) 卷09
說苑(설원)
卷八 | 卷九 | 卷十 |
易曰:「王臣蹇蹇,匪躬之故。」人臣之所以蹇蹇為難,而諫其君者非為身也,將欲以匡君之過,矯君之失也。君有過失者,危亡之萌也;見君之過失而不諫,是輕君之危亡也。夫輕君之危亡者,忠臣不忍為也。三諫而不用則去,不去則身亡;身亡者,仁人之所不為也。是故諫有五:一曰正諫,二曰降諫,三曰忠諫,四曰戇諫,五曰諷諫。孔子曰:「吾其從諷諫乎。」夫不諫則危君,固諫則危身;與其危君、寧危身;危身而終不用,則諫亦無功矣。智者度君權時,調其緩急而處其宜,上不敢危君,下不以危身,故在國而國不危,在身而身不殆;昔陳靈公不聽泄冶之諫而殺之,曹羈三諫曹君不聽而去,春秋序義雖俱賢而曹羈合禮。
卷八 | 卷九 | 卷十 |
易曰:「王臣蹇蹇,匪躬之故。」人臣之所以蹇蹇為難,而諫其君者非為身也,將欲以匡君之過,矯君之失也。君有過失者,危亡之萌也;見君之過失而不諫,是輕君之危亡也。夫輕君之危亡者,忠臣不忍為也。三諫而不用則去,不去則身亡;身亡者,仁人之所不為也。是故諫有五:一曰正諫,二曰降諫,三曰忠諫,四曰戇諫,五曰諷諫。孔子曰:「吾其從諷諫乎。」夫不諫則危君,固諫則危身;與其危君、寧危身;危身而終不用,則諫亦無功矣。智者度君權時,調其緩急而處其宜,上不敢危君,下不以危身,故在國而國不危,在身而身不殆;昔陳靈公不聽泄冶之諫而殺之,曹羈三諫曹君不聽而去,春秋序義雖俱賢而曹羈合禮。
說苑 (설원, shuōyuàn) 유향 (劉向)
說苑(설원)
Alternative Names (異名): 说苑(shuōyuàn)
구분: 구분 설화집
저자: 유향
시대: 중국 전한
중국의 교훈적인 설화집.
Alternative Names (異名): 说苑(shuōyuàn)
구분: 구분 설화집
저자: 유향
시대: 중국 전한
중국의 교훈적인 설화집.
書言故事 (서언고사, Shūyángùshi) 胡繼宗 (호계종)
書言故事(서언고사) 胡繼宗(호계종)
Alternative Names (異名):
书言故事(Shūyángùshi)
중국(中國)의 고사 성어를 분류ㆍ해석(解釋)하고 그 출전(出典)을 밝힌 책.
Alternative Names (異名):
书言故事(Shūyángùshi)
중국(中國)의 고사 성어를 분류ㆍ해석(解釋)하고 그 출전(出典)을 밝힌 책.
山海經 (산해경) 第01 南山經
山海經(산해경)
第01 南山經
南山經之首曰䧿山。其首曰招搖之山,臨於西海之上,多桂,多金玉。有草焉,其狀如韭而青華,其名曰祝餘,食之不饑。有木焉,其狀如榖而黑理,其華四照,其名曰迷穀,佩之不迷。有獸焉,其狀如禺而白耳,伏行人走,其名曰狌狌,食之善走。麗��之水出焉,而西流注於海,其中多育沛,佩之無瘕疾。
第01 南山經
南山經之首曰䧿山。其首曰招搖之山,臨於西海之上,多桂,多金玉。有草焉,其狀如韭而青華,其名曰祝餘,食之不饑。有木焉,其狀如榖而黑理,其華四照,其名曰迷穀,佩之不迷。有獸焉,其狀如禺而白耳,伏行人走,其名曰狌狌,食之善走。麗��之水出焉,而西流注於海,其中多育沛,佩之無瘕疾。
山海經 (산해경, Shānhǎijīng)
山海經(산해경)
Alternative Names (異名):
山海經(산해경), 山海经(Shānhǎijīng)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地理書). 고대의 지리·산물·신화·무술(巫術)·종교 등을 기록한 선진(先秦) 문헌.
Alternative Names (異名):
山海經(산해경), 山海经(Shānhǎijīng)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地理書). 고대의 지리·산물·신화·무술(巫術)·종교 등을 기록한 선진(先秦) 문헌.
史通 (사통) 劉知幾 (유지기)
史通(사통) 劉知幾(유지기)
당나라의 역사학자 유지기(劉知幾)가 저술한 책.
중국의 사학(史學) 이론과 사학비평의 고전으로 중국 사학사상 최초의 명저이다. 710년에 완성하였다. 내편(內編) 10권 36편, 외편(外編) 10권 13편, 합계 20권 49편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소년시절부터 사서(史書)에 친숙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시대에서 현종(玄宗) 초에 걸쳐 오랫동안 사관(史官)으로 사사(仕事)하면서 당나라 왕조실록과 《성족계록(姓族系錄)》 등의 편찬에 종사하였다.
이 《사통》은 저자가 스스로의 체험과 사색을 결정(結晶)시킨 저서로 내편에서는 기전(紀傳) ·편년(編年)과 같은 사서의 체례(體例)를 체계적으로 논술하였으며, 외편에서는 역대 사서의 연혁과 그 득실을 비평하였다. 당시 권위를 가진 유교의 경전(經典)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였으며, 동시대의 관찬(官撰), 수사기구(修史機構)의 결함을 통론하는 등 저자의 독자적인 주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또 문장은 변려문(騈儷文)으로 표현하였으며, 주석(註釋)에 청(淸)나라 포기룡(浦起龍)의 《사통통석(史通通釋)》이 있다.
당나라의 역사학자 유지기(劉知幾)가 저술한 책.
중국의 사학(史學) 이론과 사학비평의 고전으로 중국 사학사상 최초의 명저이다. 710년에 완성하였다. 내편(內編) 10권 36편, 외편(外編) 10권 13편, 합계 20권 49편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소년시절부터 사서(史書)에 친숙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시대에서 현종(玄宗) 초에 걸쳐 오랫동안 사관(史官)으로 사사(仕事)하면서 당나라 왕조실록과 《성족계록(姓族系錄)》 등의 편찬에 종사하였다.
이 《사통》은 저자가 스스로의 체험과 사색을 결정(結晶)시킨 저서로 내편에서는 기전(紀傳) ·편년(編年)과 같은 사서의 체례(體例)를 체계적으로 논술하였으며, 외편에서는 역대 사서의 연혁과 그 득실을 비평하였다. 당시 권위를 가진 유교의 경전(經典)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였으며, 동시대의 관찬(官撰), 수사기구(修史機構)의 결함을 통론하는 등 저자의 독자적인 주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또 문장은 변려문(騈儷文)으로 표현하였으며, 주석(註釋)에 청(淸)나라 포기룡(浦起龍)의 《사통통석(史通通釋)》이 있다.
三十六計 (삼십육계, Sānshíliùjì)
三十六計(삼십육계)
Alternative Names (異名):
Thirty-Six Stratagems, 三十六计(simplified Chinese), 三十六計(traditional Chinese), Sānshíliù Jì(pinyin)
삼십육계가 출판된 것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이다. 그러나 삼십육계라는 말이 세상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5세기부터였다. 워낙 유명한 병법서여서 '삼십육계'라 하면 보통사람들은 '손자병법'에 맞먹는 신비한 전략들이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 삼십육계에 독창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다른 병법서들과는 달리 정치나 군대의 조직 등에 대해서는 내용이 전혀 없다.
Alternative Names (異名):
Thirty-Six Stratagems, 三十六计(simplified Chinese), 三十六計(traditional Chinese), Sānshíliù Jì(pinyin)
삼십육계가 출판된 것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이다. 그러나 삼십육계라는 말이 세상에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5세기부터였다. 워낙 유명한 병법서여서 '삼십육계'라 하면 보통사람들은 '손자병법'에 맞먹는 신비한 전략들이 들어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 삼십육계에 독창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다른 병법서들과는 달리 정치나 군대의 조직 등에 대해서는 내용이 전혀 없다.
四書五經 (사서오경, SìShūWǔJīng)
四書五經(사서오경)
Alternative Names (異名):
四书五经(SìShūWǔJīng)
구분: 유교경전
중국에서 유가(儒家)의 기본적 경전(經典)의 총칭.
Alternative Names (異名):
四书五经(SìShūWǔJīng)
구분: 유교경전
중국에서 유가(儒家)의 기본적 경전(經典)의 총칭.
三論玄義 (삼론현의) 吉藏 (길장)
三論玄義(삼론현의) 吉藏(길장, 549~623)
수(隋)나라 길장(吉藏)이 삼론종(三論宗)의 근본경전인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의 대요를 기술한 책.
2권. 삼론종(三論宗)의 지침서이다. 처음 대귀(大歸)를 서술한 다음 여러 품(品)을 2문(門)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는데, 처음 문에서 파사(破邪) ·현정(顯正)의 두 주제를 세워, 파사에서는 외도(外道) ·비담(毘曇) ·성실(成實) ·대집(大執)의 네 가지로 나누어 설파하고, 현정은 인정(人正) ·법정(法正)으로 나누어, 인정에서는 개조(開祖) 용수(龍樹)의 인격을 논하여, 대승(大乘)의 실리(實理)를 말한 제일인자라 하였고, 법정에서는 용수의 《중론》은 바로 대승의 실리라고 단정하였다. 다음 문에서는 여러 품을 해석하는 1항(項)을 13과(科)로 나누어 팔불중도관(八不中道觀)의 요체(要諦)를 설명하였다.
관련 한자어
破邪顯正(파사현정) |
수(隋)나라 길장(吉藏)이 삼론종(三論宗)의 근본경전인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의 대요를 기술한 책.
2권. 삼론종(三論宗)의 지침서이다. 처음 대귀(大歸)를 서술한 다음 여러 품(品)을 2문(門)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는데, 처음 문에서 파사(破邪) ·현정(顯正)의 두 주제를 세워, 파사에서는 외도(外道) ·비담(毘曇) ·성실(成實) ·대집(大執)의 네 가지로 나누어 설파하고, 현정은 인정(人正) ·법정(法正)으로 나누어, 인정에서는 개조(開祖) 용수(龍樹)의 인격을 논하여, 대승(大乘)의 실리(實理)를 말한 제일인자라 하였고, 법정에서는 용수의 《중론》은 바로 대승의 실리라고 단정하였다. 다음 문에서는 여러 품을 해석하는 1항(項)을 13과(科)로 나누어 팔불중도관(八不中道觀)의 요체(要諦)를 설명하였다.
관련 한자어
破邪顯正(파사현정) |
三國志 (Sānguózhì) 卷40 劉彭廖李劉魏楊傳
三國志(Sānguózhì)
卷39 卷40 劉彭廖李劉魏楊傳 卷41
劉封
劉封者,本羅侯寇氏之子,長沙劉氏之甥也。先主至荊州,以未有繼嗣,養封為子。及先主入蜀,自葭萌還攻劉璋,時封年二十餘,有武藝,氣力過人,將兵俱與諸葛亮、張飛等溯流西上,所在戰克。益州既定,以封為副軍中郎將。
卷39 卷40 劉彭廖李劉魏楊傳 卷41
劉封
劉封者,本羅侯寇氏之子,長沙劉氏之甥也。先主至荊州,以未有繼嗣,養封為子。及先主入蜀,自葭萌還攻劉璋,時封年二十餘,有武藝,氣力過人,將兵俱與諸葛亮、張飛等溯流西上,所在戰克。益州既定,以封為副軍中郎將。
三國志 (Sānguózhì) 卷35 諸葛亮
三國志(Sānguózhì)
卷34 二主妃子傳 卷35 諸葛亮 卷36 關張馬黃趙傳
諸葛亮字孔明,琅邪陽都人也。漢司隸校尉諸葛豐後也。父圭,字君貢,漢末為太山郡丞。亮早孤,從父玄為袁術所署豫章太守,玄將亮及亮弟均之官。會漢朝更選朱皓代玄。玄素與荊州牧劉表有舊,往依之。
卷34 二主妃子傳 卷35 諸葛亮 卷36 關張馬黃趙傳
諸葛亮字孔明,琅邪陽都人也。漢司隸校尉諸葛豐後也。父圭,字君貢,漢末為太山郡丞。亮早孤,從父玄為袁術所署豫章太守,玄將亮及亮弟均之官。會漢朝更選朱皓代玄。玄素與荊州牧劉表有舊,往依之。
三國志 (Sānguózhì)
三國志(Sānguózhì)
Alternative Names (異名):
三國志, 三国志, Sānguózhì, Records of Three Kingdoms
The Records of Three Kingdoms (traditional Chinese: 三國志; simplified Chinese: 三国志; pinyin: Sānguó Zhì), is the official and authoritative historical text on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covering from 189 to 280, that was composed by Chen Shou in the 3rd century. The work collects the smaller histories of the rival states Wei, Shu and Wu of the Three Kingdoms into a single text and provided the basis for the later more popular historical novel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14th century.
Alternative Names (異名):
三國志, 三国志, Sānguózhì, Records of Three Kingdoms
The Records of Three Kingdoms (traditional Chinese: 三國志; simplified Chinese: 三国志; pinyin: Sānguó Zhì), is the official and authoritative historical text on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covering from 189 to 280, that was composed by Chen Shou in the 3rd century. The work collects the smaller histories of the rival states Wei, Shu and Wu of the Three Kingdoms into a single text and provided the basis for the later more popular historical novel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14th century.
Location:
China
史記索隱 (사기색은, Shǐjìsuǒyǐn) 司馬貞 (사마정)
史記索隱(사기색은) 司馬貞(사마정)
Alternative Names (異名):
史记索隐(Shǐjìsuǒyǐn)
사기(史記) 주석서(註釋書).
Alternative Names (異名):
史记索隐(Shǐjìsuǒyǐn)
사기(史記) 주석서(註釋書).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92 淮陰侯列傳 (회음후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黥布列傳(경포열전) |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 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
1 淮陰侯列... : 淮陰侯韓信者,淮陰人也。始為布衣時,貧無行,不得推擇為吏,又不能治生商賈,常從人寄食飲,人多厭之者,常數從其下鄉南昌亭長寄食,數月,亭長妻患之,乃晨炊蓐食。食時信往,不為具食。信亦知其意,怒,竟絕去。
黥布列傳(경포열전) |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 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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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86 刺客列傳 (자객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呂不韋列傳(여부위열전) | 刺客列傳(자객열전) | 李斯列傳(이사열전) |
1 刺客列傳: 曹沫者,魯人也,以勇力事魯莊公。莊公好力。曹沫為魯將,與齊戰,三敗北。魯莊公懼,乃獻遂邑之地以和。猶復以為將。
呂不韋列傳(여부위열전) | 刺客列傳(자객열전) | 李斯列傳(이사열전) |
1 刺客列傳: 曹沫者,魯人也,以勇力事魯莊公。莊公好力。曹沫為魯將,與齊戰,三敗北。魯莊公懼,乃獻遂邑之地以和。猶復以為將。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81 廉頗藺相如列傳 (염파인상여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01 廉頗藺相... : 廉頗者,趙之良將也。趙惠文王十六年,廉頗為趙將伐齊,大破之,取陽晉,拜為上卿,以勇氣聞於諸侯。藺相如者,趙人也,為趙宦者令繆賢舍人。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01 廉頗藺相... : 廉頗者,趙之良將也。趙惠文王十六年,廉頗為趙將伐齊,大破之,取陽晉,拜為上卿,以勇氣聞於諸侯。藺相如者,趙人也,為趙宦者令繆賢舍人。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76 平原君虞卿列傳 (평원군우경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 魏公子列傳(위공자열전) |
01 平原君虞... : 平原君趙勝者,趙之諸公子也。諸子中勝最賢,喜賓客,賓客蓋至者數千人。平原君相趙惠文王及孝成王,三去相,三復位,封於東武城。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 魏公子列傳(위공자열전) |
01 平原君虞... : 平原君趙勝者,趙之諸公子也。諸子中勝最賢,喜賓客,賓客蓋至者數千人。平原君相趙惠文王及孝成王,三去相,三復位,封於東武城。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75 孟嘗君列傳 (맹상군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
01 孟嘗君列... : 孟嘗君名文,姓田氏。文之父曰靖郭君田嬰。田嬰者,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田嬰自威王時任職用事,與成侯鄒忌及田忌將而救韓伐魏。成侯與田忌爭寵,成侯賣田忌。田忌懼,襲齊之邊邑,不勝,亡走。會威王卒,宣王立,知成侯賣田忌,乃復召田忌以為將。宣王二年,田忌與孫臏、田嬰俱伐魏,敗之馬陵,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宣王七年,田嬰使於韓、魏,韓、魏服於齊。嬰與韓昭侯、魏惠王會齊宣王東阿南,盟而去。明年,復與梁惠王會甄。是歲,梁惠王卒。宣王九年,田嬰相齊。齊宣王與魏襄王會徐州而相王也。楚威王聞之,怒田嬰。明年,楚伐敗齊師於徐州,而使人逐田嬰。田嬰使張丑說楚威王,威王乃止。田嬰相齊十一年,宣王卒,湣王即位。即位三年,而封田嬰於薛。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
01 孟嘗君列... : 孟嘗君名文,姓田氏。文之父曰靖郭君田嬰。田嬰者,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田嬰自威王時任職用事,與成侯鄒忌及田忌將而救韓伐魏。成侯與田忌爭寵,成侯賣田忌。田忌懼,襲齊之邊邑,不勝,亡走。會威王卒,宣王立,知成侯賣田忌,乃復召田忌以為將。宣王二年,田忌與孫臏、田嬰俱伐魏,敗之馬陵,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宣王七年,田嬰使於韓、魏,韓、魏服於齊。嬰與韓昭侯、魏惠王會齊宣王東阿南,盟而去。明年,復與梁惠王會甄。是歲,梁惠王卒。宣王九年,田嬰相齊。齊宣王與魏襄王會徐州而相王也。楚威王聞之,怒田嬰。明年,楚伐敗齊師於徐州,而使人逐田嬰。田嬰使張丑說楚威王,威王乃止。田嬰相齊十一年,宣王卒,湣王即位。即位三年,而封田嬰於薛。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66 伍子胥列傳 (오자서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仲尼弟子列傳(중이제자열전) |
01 伍子胥列... : 伍子胥者,楚人也,名員。員父曰伍奢。員兄曰伍尚。其先曰伍舉,以直諫事楚莊王,有顯,故其後世有名於楚。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仲尼弟子列傳(중이제자열전) |
01 伍子胥列... : 伍子胥者,楚人也,名員。員父曰伍奢。員兄曰伍尚。其先曰伍舉,以直諫事楚莊王,有顯,故其後世有名於楚。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65 孫子吳起列傳 (손자오기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司馬穰苴列傳(사마양조열전) |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01 孫子吳起... : 孫子武者,齊人也。以兵法見於吳王闔廬。闔廬曰:“子之十三篇,吾盡觀之矣,可以小試勒兵乎?”對曰:“可。”闔廬曰:“可試以婦人乎?”曰:“可。”於是許之,出宮中美女,得百八十人。孫子分為二隊,以王之寵姬二人各為隊長,皆令持戟。令之曰:“汝知而心與左右手背乎?”婦人曰:“知之。”孫子曰:“前,則視心;左,視左手;右,視右手;后,即視背。”婦人曰:“諾。”約束既布,乃設鈇鉞,即三令五申之。於是鼓之右,婦人大笑。孫子曰:“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復三令五申而鼓之左,婦人復大笑。孫子曰:“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既已明而不如法者,吏士之罪也。”乃欲斬左古隊長。吳王從臺上觀,見且斬愛姬,大駭。趣使使下令曰:“寡人已知將軍能用兵矣。寡人非此二姬,食不甘味,願勿斬也。”孫子曰:“臣既已受命為將,將在軍,君命有所不受。”遂斬隊長二人以徇。用其次為隊長,於是復鼓之。婦人左右前后跪起皆中規矩繩墨,無敢出聲。於是孫子使使報王曰:“兵既整齊,王可試下觀之,唯王所欲用之,雖赴水火猶可也。”吳王曰:“將軍罷休就舍,寡人不願下觀。”孫子曰:“王徒好其言,不能用其實。”於是闔廬知孫子能用兵,卒以為將。西破彊楚,入郢,北威齊晉,顯名諸侯,孫子與有力焉。
司馬穰苴列傳(사마양조열전) |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01 孫子吳起... : 孫子武者,齊人也。以兵法見於吳王闔廬。闔廬曰:“子之十三篇,吾盡觀之矣,可以小試勒兵乎?”對曰:“可。”闔廬曰:“可試以婦人乎?”曰:“可。”於是許之,出宮中美女,得百八十人。孫子分為二隊,以王之寵姬二人各為隊長,皆令持戟。令之曰:“汝知而心與左右手背乎?”婦人曰:“知之。”孫子曰:“前,則視心;左,視左手;右,視右手;后,即視背。”婦人曰:“諾。”約束既布,乃設鈇鉞,即三令五申之。於是鼓之右,婦人大笑。孫子曰:“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復三令五申而鼓之左,婦人復大笑。孫子曰:“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既已明而不如法者,吏士之罪也。”乃欲斬左古隊長。吳王從臺上觀,見且斬愛姬,大駭。趣使使下令曰:“寡人已知將軍能用兵矣。寡人非此二姬,食不甘味,願勿斬也。”孫子曰:“臣既已受命為將,將在軍,君命有所不受。”遂斬隊長二人以徇。用其次為隊長,於是復鼓之。婦人左右前后跪起皆中規矩繩墨,無敢出聲。於是孫子使使報王曰:“兵既整齊,王可試下觀之,唯王所欲用之,雖赴水火猶可也。”吳王曰:“將軍罷休就舍,寡人不願下觀。”孫子曰:“王徒好其言,不能用其實。”於是闔廬知孫子能用兵,卒以為將。西破彊楚,入郢,北威齊晉,顯名諸侯,孫子與有力焉。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62 晏列傳 (관안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伯夷列傳(백이열전)|管晏列傳(관안열전)|老子韓非列傳(노자한비열전)|
1 管晏列傳: 管仲夷吾者,潁上人也。少時常與鮑叔牙游,鮑叔知其賢。管仲貧困,常欺鮑叔,鮑叔終善遇之,不以為言。已而鮑叔事齊公子小白,管仲事公子糾。及小白立為桓公,公子糾死,管仲囚焉。鮑叔遂進管仲。管仲既用,任政於齊,齊桓公以霸,九合諸侯,一匡天下,管仲之謀也。
伯夷列傳(백이열전)|管晏列傳(관안열전)|老子韓非列傳(노자한비열전)|
1 管晏列傳: 管仲夷吾者,潁上人也。少時常與鮑叔牙游,鮑叔知其賢。管仲貧困,常欺鮑叔,鮑叔終善遇之,不以為言。已而鮑叔事齊公子小白,管仲事公子糾。及小白立為桓公,公子糾死,管仲囚焉。鮑叔遂進管仲。管仲既用,任政於齊,齊桓公以霸,九合諸侯,一匡天下,管仲之謀也。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61 伯夷列傳 (백이열전)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三王世家(삼왕세가) | 伯夷列傳(백이열전) | 管晏列傳(관안열전) |
1 伯夷列傳: 夫學者載籍極博,猶考信於六藝。詩書雖缺,然虞夏之文可知也。堯將遜位,讓於虞舜,舜禹之閒,岳牧咸薦,乃試之於位,典職數十年,功用既興,然後授政。示天下重器,王者大統,傳天下若斯之難也。而說者曰堯讓天下於許由,許由不受,恥之逃隱。及夏之時,有卞隨、務光者。此何以稱焉?太史公曰:余登箕山,其上蓋有許由冢云。孔子序列古之仁圣賢人,如吳太伯、伯夷之倫詳矣。余以所聞由、光義至高,其文辭不少概見,何哉?
三王世家(삼왕세가) | 伯夷列傳(백이열전) | 管晏列傳(관안열전) |
1 伯夷列傳: 夫學者載籍極博,猶考信於六藝。詩書雖缺,然虞夏之文可知也。堯將遜位,讓於虞舜,舜禹之閒,岳牧咸薦,乃試之於位,典職數十年,功用既興,然後授政。示天下重器,王者大統,傳天下若斯之難也。而說者曰堯讓天下於許由,許由不受,恥之逃隱。及夏之時,有卞隨、務光者。此何以稱焉?太史公曰:余登箕山,其上蓋有許由冢云。孔子序列古之仁圣賢人,如吳太伯、伯夷之倫詳矣。余以所聞由、光義至高,其文辭不少概見,何哉?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38 宋微子世家 (송미자세가)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衛康叔世家(위강숙세가) | 宋微子世家(송미자세가) | 晋世家(진세가) |
1 宋微子世... : 微子開者,殷帝乙之首子而帝紂之庶兄也。紂既立,不明,淫亂於政,微子數諫,紂不聽。及祖伊以周西伯昌之修德,滅黎國,懼禍至,以告紂。紂曰:“我生不有命在天乎?是何能為!”於是微子度紂終不可諫,欲死之,及去,未能自決,乃問於太師、少師曰:“殷不有治政,不治四方。我祖遂陳於上,紂沈湎於酒,婦人是用,亂敗湯德於下。殷既小大好草竊姦宄,卿士師師非度,皆有罪辜,乃無維獲,小民乃并興,相為敵讎。今殷其典喪!若涉水無津涯。殷遂喪,越至于今。”曰:“太師,少師,我其發出往?吾家保于喪?今女無故告予,顛躋,如之何其?”太師若曰:“王子,天篤下菑亡殷國,乃毋畏畏,不用老長。今殷民乃陋淫神祇之祀。今誠得治國,國治身死不恨。為死,終不得治,不如去。”遂亡。
衛康叔世家(위강숙세가) | 宋微子世家(송미자세가) | 晋世家(진세가) |
1 宋微子世... : 微子開者,殷帝乙之首子而帝紂之庶兄也。紂既立,不明,淫亂於政,微子數諫,紂不聽。及祖伊以周西伯昌之修德,滅黎國,懼禍至,以告紂。紂曰:“我生不有命在天乎?是何能為!”於是微子度紂終不可諫,欲死之,及去,未能自決,乃問於太師、少師曰:“殷不有治政,不治四方。我祖遂陳於上,紂沈湎於酒,婦人是用,亂敗湯德於下。殷既小大好草竊姦宄,卿士師師非度,皆有罪辜,乃無維獲,小民乃并興,相為敵讎。今殷其典喪!若涉水無津涯。殷遂喪,越至于今。”曰:“太師,少師,我其發出往?吾家保于喪?今女無故告予,顛躋,如之何其?”太師若曰:“王子,天篤下菑亡殷國,乃毋畏畏,不用老長。今殷民乃陋淫神祇之祀。今誠得治國,國治身死不恨。為死,終不得治,不如去。”遂亡。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07 項羽本紀 (항우본기)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高祖本紀(고조본기) |
01 項羽本紀: 項籍者,下相人也,字羽。初起時,年二十四。其季父項梁,梁父即楚將項燕,為秦將王翦所戮者也。項氏世世為楚將,封於項,故姓項氏。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 項羽本紀(항우본기) | 高祖本紀(고조본기) |
01 項羽本紀: 項籍者,下相人也,字羽。初起時,年二十四。其季父項梁,梁父即楚將項燕,為秦將王翦所戮者也。項氏世世為楚將,封於項,故姓項氏。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04 周本紀 (주본기)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殷本紀(은본기) | 周本紀(주본기) | 秦本紀(진본기) |
01 周本紀: 周后稷,名棄。其母有邰氏女,曰姜原。姜原為帝嚳元妃。姜原出野,見巨人跡,心忻然說,欲踐之,踐之而身動如孕者。居期而生子,以為不祥,棄之隘巷,馬牛過者皆辟不踐;徙置之林中,適會山林多人,遷之;而棄渠中冰上,飛鳥以其翼覆薦之。姜原以為神,遂收養長之。初欲棄之,因名曰棄。
殷本紀(은본기) | 周本紀(주본기) | 秦本紀(진본기) |
01 周本紀: 周后稷,名棄。其母有邰氏女,曰姜原。姜原為帝嚳元妃。姜原出野,見巨人跡,心忻然說,欲踐之,踐之而身動如孕者。居期而生子,以為不祥,棄之隘巷,馬牛過者皆辟不踐;徙置之林中,適會山林多人,遷之;而棄渠中冰上,飛鳥以其翼覆薦之。姜原以為神,遂收養長之。初欲棄之,因名曰棄。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03 殷本紀 (은본기)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夏本紀(하본기) | 殷本紀(은본기) | 周本紀(주본기) |
01 殷本紀: 殷契,母曰簡狄,有娀氏之女,為帝嚳次妃。三人行浴,見玄鳥墮其卵,簡狄取吞之,因孕生契。契長而佐禹治水有功。帝舜乃命契曰:“百姓不親,五品不訓,汝為司徒而敬敷五教,五教在寬。”封于商,賜姓子氏。契興於唐、虞、大禹之際,功業著於百姓,百姓以平。
02 殷本紀: 契卒,子昭明立。昭明卒,子相土立。相土卒,子昌若立。昌若卒,子曹圉立。曹圉卒,子冥立。冥卒,子振立。振卒,子微立。微卒,子報丁立。報丁卒,子報乙立。報乙卒,子報丙立。報丙卒,子主壬立。主壬卒,子主癸立。主癸卒,子天乙立,是為成湯。
03 殷本紀: 成湯,自契至湯八遷。湯始居亳,從先王居,作帝誥。
04 殷本紀: 湯征諸侯。葛伯不祀,湯始伐之。湯曰:“予有言: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伊尹曰:“明哉!言能聽,道乃進。君國子民,為善者皆在王官。勉哉,勉哉!”湯曰:“汝不能敬命,予大罰殛之,無有攸赦。”作湯征。
05 殷本紀: 伊尹名阿衡。阿衡欲奸湯而無由,乃為有莘氏媵臣,負鼎俎,以滋味說湯,致于王道。或曰,伊尹處士,湯使人聘迎之,五反然後肯往從湯,言素王及九主之事。湯舉任以國政。伊尹去湯適夏。既醜有夏,復歸于亳。入自北門,遇女鳩、女房,作女鳩女房。
06 殷本紀: 湯出,見野張網四面,祝曰:“自天下四方皆入吾網。”湯曰:“嘻,盡之矣!”乃去其三面,祝曰:“欲左,左。欲右,右。不用命,乃入吾網。”諸侯聞之,曰:“湯德至矣,及禽獸。”
07 殷本紀: 當是時,夏桀為虐政淫荒,而諸侯昆吾氏為亂。湯乃興師率諸侯,伊尹從湯,湯自把鉞以伐昆吾,遂伐桀。湯曰:“格女眾庶,來,女悉聽朕言。匪台小子敢行舉亂,有夏多罪,予維聞女眾言,夏氏有罪。予畏上帝,不敢不正。今夏多罪,天命殛之。今女有眾,女曰:‘我君不恤我眾,捨我嗇事而割政’。女其曰:‘有罪,其柰何’?夏王率止眾力,率奪夏國。眾有率怠不和,曰:‘是日何時喪?予與女皆亡’!夏德若茲,今朕必往。爾尚及予一人致天之罰,予其大理女。女毋不信,朕不食言。女不從誓言,予則帑僇女,無有攸赦。”以告令師,作湯誓。於是湯曰:“吾甚武”,號曰武王。
08 殷本紀: 桀敗於有娀之虛,桀奔於鳴條,夏師敗績。湯遂伐三嵕,俘厥寶玉,義伯、仲伯作典寶。湯既勝夏,欲遷其社,不可,作夏社。伊尹報。於是諸侯畢服,湯乃踐天子位,平定海內。
09 殷本紀: 湯歸至于泰卷陶,中壘作誥。既絀夏命,還亳,作湯誥:“維三月,王自至於東郊。告諸侯群后:‘毋不有功於民,勤力乃事。予乃大罰殛女,毋予怨。’曰:‘古禹、皋陶久勞于外,其有功乎民,民乃有安。東為江,北為濟,西為河,南為淮,四瀆已修,萬民乃有居。后稷降播,農殖百谷。三公咸有功于民,故後有立。昔蚩尤與其大夫作亂百姓,帝乃弗予,有狀。先王言不可不勉。’曰:‘不道,毋之在國,女毋我怨。’”以令諸侯。伊尹作咸有一德,咎單作明居。
10 殷本紀: 湯乃改正朔,易服色,上白,朝會以晝。
11 殷本紀: 湯崩,太子太丁未立而卒,於是乃立太丁之弟外丙,是為帝外丙。帝外丙即位三年,崩,立外丙之弟中壬,是為帝中壬。帝中壬即位四年,崩,伊尹乃立太丁之子太甲。太甲,成湯適長孫也,是為帝太甲。帝太甲元年,伊尹作伊訓,作肆命,作徂后。
12 殷本紀: 帝太甲既立三年,不明,暴虐,不遵湯法,亂德,於是伊尹放之於桐宮。三年,伊尹攝行政當國,以朝諸侯。
13 殷本紀: 帝太甲居桐宮三年,悔過自責,反善,於是伊尹乃迎帝太甲而授之政。帝太甲修德,諸侯咸歸殷,百姓以寧。伊尹嘉之,乃作太甲訓三篇,褒帝太甲,稱太宗。
14 殷本紀: 太宗崩,子沃丁立。帝沃丁之時,伊尹卒。既葬伊尹於亳,咎單遂訓伊尹事,作沃丁。
15 殷本紀: 沃丁崩,弟太庚立,是為帝太庚。帝太庚崩,子帝小甲立。帝小甲崩,弟雍己立,是為帝雍己。殷道衰,諸侯或不至。
16 殷本紀: 帝雍己崩,弟太戊立,是為帝太戊。帝太戊立伊陟為相。亳有祥桑谷共生於朝,一暮大拱。帝太戊懼,問伊陟。伊陟曰:“臣聞妖不勝德,帝之政其有闕與?帝其修德。”太戊從之,而祥桑枯死而去。伊陟贊言于巫咸。巫咸治王家有成,作咸艾,作太戊。帝太戊贊伊陟于廟,言弗臣,伊陟讓,作原命。殷復興,諸侯歸之,故稱中宗。
17 殷本紀: 中宗崩,子帝中丁立。帝中丁遷于隞。河亶甲居相。祖乙遷于邢。帝中丁崩,弟外壬立,是為帝外壬。仲丁書闕不具。帝外壬崩,弟河亶甲立,是為帝河亶甲。河亶甲時,殷復衰。
18 殷本紀: 河亶甲崩,子帝祖乙立。帝祖乙立,殷復興。巫賢任職。
19 殷本紀: 祖乙崩,子帝祖辛立。帝祖辛崩,弟沃甲立,是為帝沃甲。帝沃甲崩,立沃甲兄祖辛之子祖丁,是為帝祖丁。帝祖丁崩,立弟沃甲之子南庚,是為帝南庚。帝南庚崩,立帝祖丁之子陽甲,是為帝陽甲。帝陽甲之時,殷衰。
20 殷本紀: 自中丁以來,廢適而更立諸弟子,弟子或爭相代立,比九世亂,於是諸侯莫朝。
21 殷本紀: 帝陽甲崩,弟盤庚立,是為帝盤庚。帝盤庚之時,殷已都河北,盤庚渡河南,復居成湯之故居,乃五遷,無定處。殷民咨胥皆怨,不欲徙。盤庚乃告諭諸侯大臣曰:“昔高后成湯與爾之先祖俱定天下,法則可修。捨而弗勉,何以成德!”乃遂涉河南,治亳,行湯之政,然後百姓由寧,殷道復興。諸侯來朝,以其遵成湯之德也。
22 殷本紀: 帝盤庚崩,弟小辛立,是為帝小辛。帝小辛立,殷復衰。百姓思盤庚,乃作盤庚三篇。帝小辛崩,弟小乙立,是為帝小乙。
23 殷本紀: 帝小乙崩,子帝武丁立。帝武丁即位,思復興殷,而未得其佐。三年不言,政事決定於冢宰,以觀國風。武丁夜夢得圣人,名曰說。以夢所見視群臣百吏,皆非也。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得說於傅險中。是時說為胥靡,筑於傅險。見於武丁,武丁曰是也。得而與之語,果圣人,舉以為相,殷國大治。故遂以傅險姓之,號曰傅說。
24 殷本紀: 帝武丁祭成湯,明日,有飛雉登鼎耳而呴,武丁懼。祖己曰:“王勿憂,先修政事。”祖己乃訓王曰:“唯天監下典厥義,降年有永有不永,非天夭民,中絕其命。民有不若德,不聽罪,天既附命正厥德,乃曰其奈何。鳴呼!王嗣敬民,罔非天繼,常祀毋禮于棄道。”武丁修政行德,天下咸驩,殷道復興。
25 殷本紀: 帝武丁崩,子帝祖庚立。祖己嘉武丁之以祥雉為德,立其廟為高宗,遂作高宗肜日及訓。
26 殷本紀: 帝祖庚崩,弟祖甲立,是為帝甲。帝甲淫亂,殷復衰。
27 殷本紀: 帝甲崩,子帝廩辛立。帝廩辛崩,弟庚丁立,是為帝庚丁。帝庚丁崩,子帝武乙立。殷復去亳,徙河北。
28 殷本紀: 帝武乙無道,為偶人,謂之天神。與之博,令人為行。天神不勝,乃僇辱之。為革囊,盛血,卬而射之,命曰“射天”。武乙獵於河渭之閒,暴雷,武乙震死。子帝太丁立。帝太丁崩,子帝乙立。帝乙立,殷益衰。
29 殷本紀: 帝乙長子曰微子啟,啟母賤,不得嗣。少子辛,辛母正后,辛為嗣。帝乙崩,子辛立,是為帝辛,天下謂之紂。
30 殷本紀: 帝紂資辨捷疾,聞見甚敏;材力過人,手格猛獸;知足以距諫,言足以飾非;矜人臣以能,高天下以聲,以為皆出己之下。好酒淫樂,嬖於婦人。愛妲己,妲己之言是從。於是使師涓作新淫聲,北里之舞,靡靡之樂。厚賦稅以實鹿臺之錢,而盈鉅橋之粟。益收狗馬奇物,充仞宮室。益廣沙丘苑臺,多取野獸蜚鳥置其中。慢於鬼神。大聚樂戲於沙丘,以酒為池,縣肉為林,使男女裸相逐其閒,為長夜之飲。
31 殷本紀: 百姓怨望而諸侯有畔者,於是紂乃重刑辟,有炮格之法。以西伯昌、九侯、鄂侯為三公。九侯有好女,入之紂。九侯女不喜淫,紂怒,殺之,而醢九侯。鄂侯爭之彊,辨之疾,并脯鄂侯。西伯昌聞之,竊嘆。崇侯虎知之,以告紂,紂囚西伯羑里。西伯之臣閎夭之徒,求美女奇物善馬以獻紂,紂乃赦西伯。西伯出而獻洛西之地,以請除炮格之刑。紂乃許之,賜弓矢斧鉞,使得征伐,為西伯。而用費中為政。費中善諛,好利,殷人弗親。紂又用惡來。惡來善毀讒,諸侯以此益疏。
32 殷本紀: 西伯歸,乃陰修德行善,諸侯多叛紂而往歸西伯。西伯滋大,紂由是稍失權重。王子比干諫,弗聽。商容賢者,百姓愛之,紂廢之。及西伯伐饑國,滅之,紂之臣祖伊聞之而咎周,恐,奔告紂曰:“天既訖我殷命,假人元龜,無敢知吉,非先王不相我後人,維王淫虐用自絕,故天棄我,不有安食,不虞知天性,不迪率典。今我民罔不欲喪,曰‘天曷不降威,大命胡不至’?今王其柰何?”紂曰:“我生不有命在天乎!”祖伊反,曰:“紂不可諫矣。”西伯既卒,周武王之東伐,至盟津,諸侯叛殷會周者八百。諸侯皆曰:“紂可伐矣。”武王曰:“爾未知天命。”乃復歸。
33 殷本紀: 紂愈淫亂不止。微子數諫不聽,乃與大師、少師謀,遂去。比干曰:“為人臣者,不得不以死爭。”乃彊諫紂。紂怒曰:“吾聞圣人心有七竅。”剖比干,觀其心。箕子懼,乃詳狂為奴,紂又囚之。殷之大師、少師乃持其祭樂器奔周。周武王於是遂率諸侯伐紂。紂亦發兵距之牧野。甲子日,紂兵敗。紂走入,登鹿臺,衣其寶玉衣,赴火而死。周武王遂斬紂頭,縣之[大]白旗。殺妲己。釋箕子之囚,封比干之墓,表商容之閭。封紂子武庚、祿父,以續殷祀,令修行盤庚之政。殷民大說。於是周武王為天子。其後世貶帝號,號為王。而封殷后為諸侯,屬周。
34 殷本紀: 周武王崩,武庚與管叔、蔡叔作亂,成王命周公誅之,而立微子於宋,以續殷后焉。
35 殷本紀: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北殷氏、目夷氏。孔子曰,殷路車為善,而色尚白。
夏本紀(하본기) | 殷本紀(은본기) | 周本紀(주본기) |
01 殷本紀: 殷契,母曰簡狄,有娀氏之女,為帝嚳次妃。三人行浴,見玄鳥墮其卵,簡狄取吞之,因孕生契。契長而佐禹治水有功。帝舜乃命契曰:“百姓不親,五品不訓,汝為司徒而敬敷五教,五教在寬。”封于商,賜姓子氏。契興於唐、虞、大禹之際,功業著於百姓,百姓以平。
02 殷本紀: 契卒,子昭明立。昭明卒,子相土立。相土卒,子昌若立。昌若卒,子曹圉立。曹圉卒,子冥立。冥卒,子振立。振卒,子微立。微卒,子報丁立。報丁卒,子報乙立。報乙卒,子報丙立。報丙卒,子主壬立。主壬卒,子主癸立。主癸卒,子天乙立,是為成湯。
03 殷本紀: 成湯,自契至湯八遷。湯始居亳,從先王居,作帝誥。
04 殷本紀: 湯征諸侯。葛伯不祀,湯始伐之。湯曰:“予有言: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伊尹曰:“明哉!言能聽,道乃進。君國子民,為善者皆在王官。勉哉,勉哉!”湯曰:“汝不能敬命,予大罰殛之,無有攸赦。”作湯征。
05 殷本紀: 伊尹名阿衡。阿衡欲奸湯而無由,乃為有莘氏媵臣,負鼎俎,以滋味說湯,致于王道。或曰,伊尹處士,湯使人聘迎之,五反然後肯往從湯,言素王及九主之事。湯舉任以國政。伊尹去湯適夏。既醜有夏,復歸于亳。入自北門,遇女鳩、女房,作女鳩女房。
06 殷本紀: 湯出,見野張網四面,祝曰:“自天下四方皆入吾網。”湯曰:“嘻,盡之矣!”乃去其三面,祝曰:“欲左,左。欲右,右。不用命,乃入吾網。”諸侯聞之,曰:“湯德至矣,及禽獸。”
07 殷本紀: 當是時,夏桀為虐政淫荒,而諸侯昆吾氏為亂。湯乃興師率諸侯,伊尹從湯,湯自把鉞以伐昆吾,遂伐桀。湯曰:“格女眾庶,來,女悉聽朕言。匪台小子敢行舉亂,有夏多罪,予維聞女眾言,夏氏有罪。予畏上帝,不敢不正。今夏多罪,天命殛之。今女有眾,女曰:‘我君不恤我眾,捨我嗇事而割政’。女其曰:‘有罪,其柰何’?夏王率止眾力,率奪夏國。眾有率怠不和,曰:‘是日何時喪?予與女皆亡’!夏德若茲,今朕必往。爾尚及予一人致天之罰,予其大理女。女毋不信,朕不食言。女不從誓言,予則帑僇女,無有攸赦。”以告令師,作湯誓。於是湯曰:“吾甚武”,號曰武王。
08 殷本紀: 桀敗於有娀之虛,桀奔於鳴條,夏師敗績。湯遂伐三嵕,俘厥寶玉,義伯、仲伯作典寶。湯既勝夏,欲遷其社,不可,作夏社。伊尹報。於是諸侯畢服,湯乃踐天子位,平定海內。
09 殷本紀: 湯歸至于泰卷陶,中壘作誥。既絀夏命,還亳,作湯誥:“維三月,王自至於東郊。告諸侯群后:‘毋不有功於民,勤力乃事。予乃大罰殛女,毋予怨。’曰:‘古禹、皋陶久勞于外,其有功乎民,民乃有安。東為江,北為濟,西為河,南為淮,四瀆已修,萬民乃有居。后稷降播,農殖百谷。三公咸有功于民,故後有立。昔蚩尤與其大夫作亂百姓,帝乃弗予,有狀。先王言不可不勉。’曰:‘不道,毋之在國,女毋我怨。’”以令諸侯。伊尹作咸有一德,咎單作明居。
10 殷本紀: 湯乃改正朔,易服色,上白,朝會以晝。
11 殷本紀: 湯崩,太子太丁未立而卒,於是乃立太丁之弟外丙,是為帝外丙。帝外丙即位三年,崩,立外丙之弟中壬,是為帝中壬。帝中壬即位四年,崩,伊尹乃立太丁之子太甲。太甲,成湯適長孫也,是為帝太甲。帝太甲元年,伊尹作伊訓,作肆命,作徂后。
12 殷本紀: 帝太甲既立三年,不明,暴虐,不遵湯法,亂德,於是伊尹放之於桐宮。三年,伊尹攝行政當國,以朝諸侯。
13 殷本紀: 帝太甲居桐宮三年,悔過自責,反善,於是伊尹乃迎帝太甲而授之政。帝太甲修德,諸侯咸歸殷,百姓以寧。伊尹嘉之,乃作太甲訓三篇,褒帝太甲,稱太宗。
14 殷本紀: 太宗崩,子沃丁立。帝沃丁之時,伊尹卒。既葬伊尹於亳,咎單遂訓伊尹事,作沃丁。
15 殷本紀: 沃丁崩,弟太庚立,是為帝太庚。帝太庚崩,子帝小甲立。帝小甲崩,弟雍己立,是為帝雍己。殷道衰,諸侯或不至。
16 殷本紀: 帝雍己崩,弟太戊立,是為帝太戊。帝太戊立伊陟為相。亳有祥桑谷共生於朝,一暮大拱。帝太戊懼,問伊陟。伊陟曰:“臣聞妖不勝德,帝之政其有闕與?帝其修德。”太戊從之,而祥桑枯死而去。伊陟贊言于巫咸。巫咸治王家有成,作咸艾,作太戊。帝太戊贊伊陟于廟,言弗臣,伊陟讓,作原命。殷復興,諸侯歸之,故稱中宗。
17 殷本紀: 中宗崩,子帝中丁立。帝中丁遷于隞。河亶甲居相。祖乙遷于邢。帝中丁崩,弟外壬立,是為帝外壬。仲丁書闕不具。帝外壬崩,弟河亶甲立,是為帝河亶甲。河亶甲時,殷復衰。
18 殷本紀: 河亶甲崩,子帝祖乙立。帝祖乙立,殷復興。巫賢任職。
19 殷本紀: 祖乙崩,子帝祖辛立。帝祖辛崩,弟沃甲立,是為帝沃甲。帝沃甲崩,立沃甲兄祖辛之子祖丁,是為帝祖丁。帝祖丁崩,立弟沃甲之子南庚,是為帝南庚。帝南庚崩,立帝祖丁之子陽甲,是為帝陽甲。帝陽甲之時,殷衰。
20 殷本紀: 自中丁以來,廢適而更立諸弟子,弟子或爭相代立,比九世亂,於是諸侯莫朝。
21 殷本紀: 帝陽甲崩,弟盤庚立,是為帝盤庚。帝盤庚之時,殷已都河北,盤庚渡河南,復居成湯之故居,乃五遷,無定處。殷民咨胥皆怨,不欲徙。盤庚乃告諭諸侯大臣曰:“昔高后成湯與爾之先祖俱定天下,法則可修。捨而弗勉,何以成德!”乃遂涉河南,治亳,行湯之政,然後百姓由寧,殷道復興。諸侯來朝,以其遵成湯之德也。
22 殷本紀: 帝盤庚崩,弟小辛立,是為帝小辛。帝小辛立,殷復衰。百姓思盤庚,乃作盤庚三篇。帝小辛崩,弟小乙立,是為帝小乙。
23 殷本紀: 帝小乙崩,子帝武丁立。帝武丁即位,思復興殷,而未得其佐。三年不言,政事決定於冢宰,以觀國風。武丁夜夢得圣人,名曰說。以夢所見視群臣百吏,皆非也。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得說於傅險中。是時說為胥靡,筑於傅險。見於武丁,武丁曰是也。得而與之語,果圣人,舉以為相,殷國大治。故遂以傅險姓之,號曰傅說。
24 殷本紀: 帝武丁祭成湯,明日,有飛雉登鼎耳而呴,武丁懼。祖己曰:“王勿憂,先修政事。”祖己乃訓王曰:“唯天監下典厥義,降年有永有不永,非天夭民,中絕其命。民有不若德,不聽罪,天既附命正厥德,乃曰其奈何。鳴呼!王嗣敬民,罔非天繼,常祀毋禮于棄道。”武丁修政行德,天下咸驩,殷道復興。
25 殷本紀: 帝武丁崩,子帝祖庚立。祖己嘉武丁之以祥雉為德,立其廟為高宗,遂作高宗肜日及訓。
26 殷本紀: 帝祖庚崩,弟祖甲立,是為帝甲。帝甲淫亂,殷復衰。
27 殷本紀: 帝甲崩,子帝廩辛立。帝廩辛崩,弟庚丁立,是為帝庚丁。帝庚丁崩,子帝武乙立。殷復去亳,徙河北。
28 殷本紀: 帝武乙無道,為偶人,謂之天神。與之博,令人為行。天神不勝,乃僇辱之。為革囊,盛血,卬而射之,命曰“射天”。武乙獵於河渭之閒,暴雷,武乙震死。子帝太丁立。帝太丁崩,子帝乙立。帝乙立,殷益衰。
29 殷本紀: 帝乙長子曰微子啟,啟母賤,不得嗣。少子辛,辛母正后,辛為嗣。帝乙崩,子辛立,是為帝辛,天下謂之紂。
30 殷本紀: 帝紂資辨捷疾,聞見甚敏;材力過人,手格猛獸;知足以距諫,言足以飾非;矜人臣以能,高天下以聲,以為皆出己之下。好酒淫樂,嬖於婦人。愛妲己,妲己之言是從。於是使師涓作新淫聲,北里之舞,靡靡之樂。厚賦稅以實鹿臺之錢,而盈鉅橋之粟。益收狗馬奇物,充仞宮室。益廣沙丘苑臺,多取野獸蜚鳥置其中。慢於鬼神。大聚樂戲於沙丘,以酒為池,縣肉為林,使男女裸相逐其閒,為長夜之飲。
31 殷本紀: 百姓怨望而諸侯有畔者,於是紂乃重刑辟,有炮格之法。以西伯昌、九侯、鄂侯為三公。九侯有好女,入之紂。九侯女不喜淫,紂怒,殺之,而醢九侯。鄂侯爭之彊,辨之疾,并脯鄂侯。西伯昌聞之,竊嘆。崇侯虎知之,以告紂,紂囚西伯羑里。西伯之臣閎夭之徒,求美女奇物善馬以獻紂,紂乃赦西伯。西伯出而獻洛西之地,以請除炮格之刑。紂乃許之,賜弓矢斧鉞,使得征伐,為西伯。而用費中為政。費中善諛,好利,殷人弗親。紂又用惡來。惡來善毀讒,諸侯以此益疏。
32 殷本紀: 西伯歸,乃陰修德行善,諸侯多叛紂而往歸西伯。西伯滋大,紂由是稍失權重。王子比干諫,弗聽。商容賢者,百姓愛之,紂廢之。及西伯伐饑國,滅之,紂之臣祖伊聞之而咎周,恐,奔告紂曰:“天既訖我殷命,假人元龜,無敢知吉,非先王不相我後人,維王淫虐用自絕,故天棄我,不有安食,不虞知天性,不迪率典。今我民罔不欲喪,曰‘天曷不降威,大命胡不至’?今王其柰何?”紂曰:“我生不有命在天乎!”祖伊反,曰:“紂不可諫矣。”西伯既卒,周武王之東伐,至盟津,諸侯叛殷會周者八百。諸侯皆曰:“紂可伐矣。”武王曰:“爾未知天命。”乃復歸。
33 殷本紀: 紂愈淫亂不止。微子數諫不聽,乃與大師、少師謀,遂去。比干曰:“為人臣者,不得不以死爭。”乃彊諫紂。紂怒曰:“吾聞圣人心有七竅。”剖比干,觀其心。箕子懼,乃詳狂為奴,紂又囚之。殷之大師、少師乃持其祭樂器奔周。周武王於是遂率諸侯伐紂。紂亦發兵距之牧野。甲子日,紂兵敗。紂走入,登鹿臺,衣其寶玉衣,赴火而死。周武王遂斬紂頭,縣之[大]白旗。殺妲己。釋箕子之囚,封比干之墓,表商容之閭。封紂子武庚、祿父,以續殷祀,令修行盤庚之政。殷民大說。於是周武王為天子。其後世貶帝號,號為王。而封殷后為諸侯,屬周。
34 殷本紀: 周武王崩,武庚與管叔、蔡叔作亂,成王命周公誅之,而立微子於宋,以續殷后焉。
35 殷本紀: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自成湯以來,采於書詩。契為子姓,其後分封,以國為姓,有殷氏、來氏、宋氏、空桐氏、稚氏、北殷氏、目夷氏。孔子曰,殷路車為善,而色尚白。
史記 (사기) 司馬遷 (사마천) 002 夏本紀 (하본기)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夏本紀(하본기)
01 夏本紀: 夏禹,名曰文命。禹之父曰鯀,鯀之父曰帝顓頊,顓頊之父曰昌意,昌意之父曰黃帝。禹者,黃帝之玄孫而帝顓頊之孫也。禹之曾大父昌意及父鯀皆不得在帝位,為人臣。
02 夏本紀: 當帝堯之時,鴻水滔天,浩浩懷山襄陵,下民其憂。堯求能治水者,群臣四岳皆曰鯀可。堯曰:“鯀為人負命毀族,不可。”四岳曰:“等之未有賢於鯀者,願帝試之。”於是堯聽四岳,用鯀治水。九年而水不息,功用不成。於是帝堯乃求人,更得舜。舜登用,攝行天子之政,巡狩。行視鯀之治水無狀,乃殛鯀於羽山以死。天下皆以舜之誅為是。於是舜舉鯀子禹,而使續鯀之業。
03 夏本紀: 堯崩,帝舜問四岳曰:“有能成美堯之事者使居官?”皆曰:“伯禹為司空,可成美堯之功。”舜曰:“嗟,然!”命禹:“女平水土,維是勉之。”禹拜稽首,讓於契、后稷、皋陶。舜曰:“女其往視爾事矣。”
04 夏本紀: 禹為人敏給克勤;其德不違,其仁可親,其言可信;聲為律,身為度,稱以出;亹亹穆穆,為綱為紀。
05 夏本紀: 禹乃遂與益、后稷奉帝命,命諸侯百姓興人徒以傅土,行山表木,定高山大川。禹傷先人父鯀功之不成受誅,乃勞身焦思,居外十三年,過家門不敢入。薄衣食,致孝于鬼神。卑宮室,致費於溝淢。陸行乘車,水行乘船,泥行乘橇,山行乘檋。左準繩,右規矩,載四時,以開九州,通九道,陂九澤,度九山。令益予眾庶稻,可種卑溼。命后稷予眾庶難得之食。食少,調有餘相給,以均諸侯。禹乃行相地宜所有以貢,及山川之便利。
06 夏本紀: 禹行自冀州始。冀州:既載壺口,治梁及岐。既修太原,至于岳陽。覃懷致功,至於衡漳。其土白壤。賦上上錯,田中中,常、衛既從,大陸既為。鳥夷皮服。夾右碣石,入于海。
07 夏本紀: 濟、河維沇州:九河既道,雷夏既澤,雍、沮會同,桑土既蠶,於是民得下丘居土。其土黑墳,草繇木條。田中下,賦貞,作十有三年乃同。其貢漆絲,其篚織文。浮於濟、漯,通於河。
08 夏本紀: 海岱維青州:堣夷既略,濰、淄其道。其土白墳,海濱廣潟,厥田斥鹵。田上下,賦中上。厥貢鹽絺,海物維錯,岱畎絲、枲、鉛、松、怪石,萊夷為牧,其篚酓絲。浮於汶,通於濟。
09 夏本紀: 海岱及淮維徐州:淮、沂其治,蒙、羽其藝。大野既都,東原底平。其土赤埴墳,草木漸包。其田上中,賦中中。貢維土五色,羽畎夏狄,嶧陽孤桐,泗濱浮磬,淮夷蠙珠臮魚,其篚玄纖縞。浮于淮、泗,通于河。
10 夏本紀: 淮海維揚州:彭蠡既都,陽鳥所居。三江既入,震澤致定。竹箭既布。其草惟夭,其木惟喬,其土涂泥。田下下,賦下上上雜。貢金三品,瑤、琨、竹箭,齒、革、羽、旄,島夷卉服,其篚織貝,其包橘、柚錫貢。均江海,通淮、泗。
11 夏本紀: 荊及衡陽維荊州:江、漢朝宗于海。九江甚中,沱、涔已道,云土、夢為治。其土涂泥。田下中,賦上下。貢羽、旄、齒、革,金三品,杶、榦、栝、柏,礪、砥、砮、丹,維箘簬、楛,三國致貢其名,包匭菁茅,其篚玄纁璣組,九江入賜大龜。浮于江、沱、涔、(于)漢,踰于雒,至于南河。
12 夏本紀: 荊河惟豫州:伊、雒、瀍、澗既入于河,滎播既都,道荷澤,被明都。其土壤,下土墳壚。田中上,賦雜上中。貢漆、絲、絺、紵,其篚纖絮,錫貢磬錯。浮於雒,達於河。
13 夏本紀: 華陽黑水惟梁州:汶、嶓既藝,沱、涔既道,蔡、蒙旅平,和夷厎績。其土青驪。田下上,賦下中三錯。貢璆、鐵、銀、鏤、砮、磬,熊、羆、狐、貍、織皮。西傾因桓是來,浮于潛,踰于沔,入于渭,亂于河。
14 夏本紀: 黑水西河惟雍州:弱水既西,涇屬渭汭。漆、沮既從,灃水所同。荊、岐已旅,終南、敦物至于鳥鼠。原隰厎績,至于都野。三危既度,三苗大序。其土黃壤。田上上,賦中下。貢璆、琳、瑯玕。浮于積石,至于龍門西河,會于渭汭。織皮昆侖、析支、渠搜,西戎即序。
15 夏本紀: 道九山:汧及岐至于荊山,踰于河;壺口、雷首至于太岳;砥柱、析城至于王屋;太行、常山至于碣石,入于海;西傾、朱圉、鳥鼠至于太華;熊耳、外方、桐柏至于負尾;道嶓冢,至于荊山;內方至于大別;汶山之陽至衡山,過九江,至于敷淺原。
16 夏本紀: 道九川:弱水至於合黎,餘波入于流沙。道黑水,至于三危,入于南海。道河積石,至于龍門,南至華陰,東至砥柱,又東至于盟津,東過雒汭,至于大邳,北過降水,至于大陸,北播為九河,同為逆河,入于海。嶓冢道瀁,東流為漢,又東為蒼浪之水,過三澨,入于大別,南入于江,東匯澤為彭蠡,東為北江,入于海。汶山道江,東別為沱,又東至于醴,過九江,至于東陵,東迆北會于匯,東為中江,入于梅。道沇水,東為濟,入于河,泆為滎,東出陶丘北,又東至于荷,又東北會于汶,又東北入于海。道淮自桐柏,東會于泗、沂,東入于海。道渭自鳥鼠同穴,東會于灃,又東北至于涇,東過漆、沮,入于河。道雒自熊耳,東北會于澗、瀍,又東會于伊,東北入于河。
17 夏本紀: 於是九州攸同,四奧既居,九山刊旅,九川滌原,九澤既陂,四海會同。六府甚修,眾土交正,致慎財賦,咸則三壤成賦。中國賜土姓:“祗臺德先,不距朕行。”
18 夏本紀: 令天子之國以外五百里甸服:百里賦納總,二百里納緫,三百里納秸服,四百里粟,五百里米。甸服外五百里侯服:百里采,二百里任國,三百里諸侯。侯服外五百里綏服:三百里揆文教,二百里奮武衛。綏服外五百里要服:三百里夷,二百里蔡。要服外五百里荒服:三百里蠻,二百里流。
19 夏本紀: 東漸于海,西被于流沙,朔、南暨:聲教訖于四海。於是帝錫禹玄圭,以告成功于天下。天下於是太平治。
20 夏本紀: 皋陶作士以理民。帝舜朝,禹、伯夷、皋陶相與語帝前。皋陶述其謀曰:“信其道德,謀明輔和。”禹曰:“然,如何?”皋陶曰:“於!慎其身修,思長,敦序九族,眾明高翼,近可遠在已。”禹拜美言,曰:“然。”皋陶曰:“於!在知人,在安民。”禹曰:“吁!皆若是,惟帝其難之。知人則智,能官人;能安民則惠,黎民懷之。能知能惠,何憂乎驩兜,何遷乎有苗,何畏乎巧言善色佞人?”皋陶曰:“然,於!亦行有九德,亦言其有德。”乃言曰:“始事事,寬而栗,柔而立,願而共,治而敬,擾而毅,直而溫,簡而廉,剛而實,彊而義,章其有常,吉哉。日宣三德,蚤夜翊明有家。日嚴振敬六德,亮采有國。翕受普施,九德咸事,俊乂在官,百吏肅謹。毋教邪淫奇謀。非其人居其官,是謂亂天事。天討有罪,五刑五用哉。吾言厎可行乎?”禹曰:“女言致可績行。”皋陶曰:“余未有知,思贊道哉。”
21 夏本紀: 帝舜謂禹曰:“女亦昌言。”禹拜曰;“於,予何言!予思日孳孳。”皋陶難禹曰:“何謂孳孳?”禹曰:“鴻水滔天,浩浩懷山襄陵,下民皆服於水。予陸行乘車,水行乘舟,泥行乘橇,山行乘檋,行山刊木。與益予眾庶稻鮮食。以決九川致四海,浚畎澮致之川。與稷予眾庶難得之食。食少,調有餘補不足,徙居。眾民乃定,萬國為治。”皋陶曰:“然,此而美也。”
22 夏本紀: 禹曰:“於,帝!慎乃在位,安爾止。輔德,天下大應。清意以昭待上帝命,天其重命用休。”帝曰:“吁,臣哉,臣哉!臣作朕股肱耳目。予欲左右有民,女輔之。余欲觀古人之象。日月星辰,作文繡服色,女明之。予欲聞六律五聲八音,來始滑,以出入五言,女聽。予即辟,女匡拂予。女無面諛。退而謗予。敬四輔臣。諸眾讒嬖臣,君德誠施皆清矣。”禹曰:“然。帝即不時,布同善惡則毋功。”
23 夏本紀: 帝曰:“毋若丹朱傲,維慢游是好,毋水行舟,朋淫于家,用絕其世。予不能順是。”禹曰:“予(辛壬)娶涂山,[辛壬]癸甲,生啟予不子,以故能成水土功。輔成五服,至于五千里,州十二師,外薄四海,咸建五長,各道有功。苗頑不即功,帝其念哉。”帝曰:“道吾德,乃女功序之也。”
24 夏本紀: 皋陶於是敬禹之德,令民皆則禹。不如言,刑從之。舜德大明。
25 夏本紀: 於是夔行樂,祖考至,群后相讓,鳥獸翔舞,簫韶九成,鳳皇來儀,百獸率舞,百官信諧。帝用此作歌曰:“陟天之命,維時維幾。”乃歌曰:“股肱喜哉,元首起哉,百工熙哉!”皋陶拜手稽首揚言曰:“念哉,率為興事,慎乃憲,敬哉!”乃更為歌曰:“元首明哉,股肱良哉,庶事康哉!”(舜)又歌曰:“元首叢脞哉,股肱惰哉,萬事墮哉!”帝拜曰:“然,往欽哉!”於是天下皆宗禹之明度數聲樂,為山川神主。
26 夏本紀: 帝舜薦禹於天,為嗣。十七年而帝舜崩。三年喪畢,禹辭辟舜之子商均於陽城。天下諸侯皆去商均而朝禹。禹於是遂即天子位,南面朝天下,國號曰夏后,姓姒氏。
27 夏本紀: 帝禹立而舉皋陶薦之,且授政焉,而皋陶卒。封皋陶之後於英、六,或在許。而後舉益,任之政。
28 夏本紀: 十年,帝禹東巡狩,至于會稽而崩。以天下授益。三年之喪畢,益讓帝禹之子啟,而辟居箕山之陽。禹子啟賢,天下屬意焉。及禹崩,雖授益,益之佐禹日淺,天下未洽。故諸侯皆去益而朝啟,曰:“吾君帝禹之子也”。於是啟遂即天子之位,是為夏后帝啟。
29 夏本紀: 夏后帝啟,禹之子,其母涂山氏之女也。
30 夏本紀: 有扈氏不服,啟伐之,大戰於甘。將戰,作甘誓,乃召六卿申之。啟曰:“嗟!六事之人,予誓告女:有扈氏威侮五行,怠棄三正,天用勦絕其命。今予維共行天之罰。左不攻于左,右不攻于右,女不共命。御非其馬之政,女不共命。用命,賞于祖;不用命,僇于社,予則帑僇女。”遂滅有扈氏。天下咸朝。
31 夏本紀: 夏后帝啟崩,子帝太康立。帝太康失國,昆弟五人,須于洛汭,作五子之歌。
32 夏本紀: 太康崩,弟中康立,是為帝中康。帝中康時,羲、和湎淫,廢時亂日。胤往征之,作胤征。
33 夏本紀: 中康崩,子帝相立。帝相崩,子帝少康立。帝少康崩,子帝予立。帝予崩,子帝槐立。帝槐崩,子帝芒立。帝芒崩,子帝泄立。帝泄崩,子帝不降立。帝不降崩,弟帝扃立。帝扃崩,子帝廑立。帝廑崩,立帝不降之子孔甲,是為帝孔甲。帝孔甲立,好方鬼神,事淫亂。夏后氏德衰,諸侯畔之。天降龍二,有雌雄,孔甲不能食,未得豢龍氏。陶唐既衰,其后有劉累,學擾龍于豢龍氏,以事孔甲。孔甲賜之姓曰御龍氏,受豕韋之後。龍一雌死,以食夏后。夏后使求,懼而遷去。
34 夏本紀: 孔甲崩,子帝皋立。帝皋崩,子帝發立。帝發崩,子帝履癸立,是為桀。帝桀之時,自孔甲以來而諸侯多畔夏,桀不務德而武傷百姓,百姓弗堪。乃召湯而囚之夏臺,已而釋之。湯修德,諸侯皆歸湯,湯遂率兵以伐夏桀。桀走鳴條,遂放而死。桀謂人曰:“吾悔不遂殺湯於夏臺,使至此。”湯乃踐天子位,代夏朝天下。湯封夏之後,至周封於杞也。
35 夏本紀: 太史公曰:禹為姒姓,其後分封,用國為姓,故有夏后氏、有扈氏、有男氏、斟尋氏、彤城氏、褒氏、費氏、杞氏、繒氏、辛氏、冥氏、斟(氏)戈氏。孔子正夏時,學者多傳夏小正云。自虞、夏時,貢賦備矣。或言禹會諸侯江南,計功而崩,因葬焉,命曰會稽。會稽者,會計也。
司馬遷(사마천)
夏本紀(하본기)
01 夏本紀: 夏禹,名曰文命。禹之父曰鯀,鯀之父曰帝顓頊,顓頊之父曰昌意,昌意之父曰黃帝。禹者,黃帝之玄孫而帝顓頊之孫也。禹之曾大父昌意及父鯀皆不得在帝位,為人臣。
02 夏本紀: 當帝堯之時,鴻水滔天,浩浩懷山襄陵,下民其憂。堯求能治水者,群臣四岳皆曰鯀可。堯曰:“鯀為人負命毀族,不可。”四岳曰:“等之未有賢於鯀者,願帝試之。”於是堯聽四岳,用鯀治水。九年而水不息,功用不成。於是帝堯乃求人,更得舜。舜登用,攝行天子之政,巡狩。行視鯀之治水無狀,乃殛鯀於羽山以死。天下皆以舜之誅為是。於是舜舉鯀子禹,而使續鯀之業。
03 夏本紀: 堯崩,帝舜問四岳曰:“有能成美堯之事者使居官?”皆曰:“伯禹為司空,可成美堯之功。”舜曰:“嗟,然!”命禹:“女平水土,維是勉之。”禹拜稽首,讓於契、后稷、皋陶。舜曰:“女其往視爾事矣。”
04 夏本紀: 禹為人敏給克勤;其德不違,其仁可親,其言可信;聲為律,身為度,稱以出;亹亹穆穆,為綱為紀。
05 夏本紀: 禹乃遂與益、后稷奉帝命,命諸侯百姓興人徒以傅土,行山表木,定高山大川。禹傷先人父鯀功之不成受誅,乃勞身焦思,居外十三年,過家門不敢入。薄衣食,致孝于鬼神。卑宮室,致費於溝淢。陸行乘車,水行乘船,泥行乘橇,山行乘檋。左準繩,右規矩,載四時,以開九州,通九道,陂九澤,度九山。令益予眾庶稻,可種卑溼。命后稷予眾庶難得之食。食少,調有餘相給,以均諸侯。禹乃行相地宜所有以貢,及山川之便利。
06 夏本紀: 禹行自冀州始。冀州:既載壺口,治梁及岐。既修太原,至于岳陽。覃懷致功,至於衡漳。其土白壤。賦上上錯,田中中,常、衛既從,大陸既為。鳥夷皮服。夾右碣石,入于海。
07 夏本紀: 濟、河維沇州:九河既道,雷夏既澤,雍、沮會同,桑土既蠶,於是民得下丘居土。其土黑墳,草繇木條。田中下,賦貞,作十有三年乃同。其貢漆絲,其篚織文。浮於濟、漯,通於河。
08 夏本紀: 海岱維青州:堣夷既略,濰、淄其道。其土白墳,海濱廣潟,厥田斥鹵。田上下,賦中上。厥貢鹽絺,海物維錯,岱畎絲、枲、鉛、松、怪石,萊夷為牧,其篚酓絲。浮於汶,通於濟。
09 夏本紀: 海岱及淮維徐州:淮、沂其治,蒙、羽其藝。大野既都,東原底平。其土赤埴墳,草木漸包。其田上中,賦中中。貢維土五色,羽畎夏狄,嶧陽孤桐,泗濱浮磬,淮夷蠙珠臮魚,其篚玄纖縞。浮于淮、泗,通于河。
10 夏本紀: 淮海維揚州:彭蠡既都,陽鳥所居。三江既入,震澤致定。竹箭既布。其草惟夭,其木惟喬,其土涂泥。田下下,賦下上上雜。貢金三品,瑤、琨、竹箭,齒、革、羽、旄,島夷卉服,其篚織貝,其包橘、柚錫貢。均江海,通淮、泗。
11 夏本紀: 荊及衡陽維荊州:江、漢朝宗于海。九江甚中,沱、涔已道,云土、夢為治。其土涂泥。田下中,賦上下。貢羽、旄、齒、革,金三品,杶、榦、栝、柏,礪、砥、砮、丹,維箘簬、楛,三國致貢其名,包匭菁茅,其篚玄纁璣組,九江入賜大龜。浮于江、沱、涔、(于)漢,踰于雒,至于南河。
12 夏本紀: 荊河惟豫州:伊、雒、瀍、澗既入于河,滎播既都,道荷澤,被明都。其土壤,下土墳壚。田中上,賦雜上中。貢漆、絲、絺、紵,其篚纖絮,錫貢磬錯。浮於雒,達於河。
13 夏本紀: 華陽黑水惟梁州:汶、嶓既藝,沱、涔既道,蔡、蒙旅平,和夷厎績。其土青驪。田下上,賦下中三錯。貢璆、鐵、銀、鏤、砮、磬,熊、羆、狐、貍、織皮。西傾因桓是來,浮于潛,踰于沔,入于渭,亂于河。
14 夏本紀: 黑水西河惟雍州:弱水既西,涇屬渭汭。漆、沮既從,灃水所同。荊、岐已旅,終南、敦物至于鳥鼠。原隰厎績,至于都野。三危既度,三苗大序。其土黃壤。田上上,賦中下。貢璆、琳、瑯玕。浮于積石,至于龍門西河,會于渭汭。織皮昆侖、析支、渠搜,西戎即序。
15 夏本紀: 道九山:汧及岐至于荊山,踰于河;壺口、雷首至于太岳;砥柱、析城至于王屋;太行、常山至于碣石,入于海;西傾、朱圉、鳥鼠至于太華;熊耳、外方、桐柏至于負尾;道嶓冢,至于荊山;內方至于大別;汶山之陽至衡山,過九江,至于敷淺原。
16 夏本紀: 道九川:弱水至於合黎,餘波入于流沙。道黑水,至于三危,入于南海。道河積石,至于龍門,南至華陰,東至砥柱,又東至于盟津,東過雒汭,至于大邳,北過降水,至于大陸,北播為九河,同為逆河,入于海。嶓冢道瀁,東流為漢,又東為蒼浪之水,過三澨,入于大別,南入于江,東匯澤為彭蠡,東為北江,入于海。汶山道江,東別為沱,又東至于醴,過九江,至于東陵,東迆北會于匯,東為中江,入于梅。道沇水,東為濟,入于河,泆為滎,東出陶丘北,又東至于荷,又東北會于汶,又東北入于海。道淮自桐柏,東會于泗、沂,東入于海。道渭自鳥鼠同穴,東會于灃,又東北至于涇,東過漆、沮,入于河。道雒自熊耳,東北會于澗、瀍,又東會于伊,東北入于河。
17 夏本紀: 於是九州攸同,四奧既居,九山刊旅,九川滌原,九澤既陂,四海會同。六府甚修,眾土交正,致慎財賦,咸則三壤成賦。中國賜土姓:“祗臺德先,不距朕行。”
18 夏本紀: 令天子之國以外五百里甸服:百里賦納總,二百里納緫,三百里納秸服,四百里粟,五百里米。甸服外五百里侯服:百里采,二百里任國,三百里諸侯。侯服外五百里綏服:三百里揆文教,二百里奮武衛。綏服外五百里要服:三百里夷,二百里蔡。要服外五百里荒服:三百里蠻,二百里流。
19 夏本紀: 東漸于海,西被于流沙,朔、南暨:聲教訖于四海。於是帝錫禹玄圭,以告成功于天下。天下於是太平治。
20 夏本紀: 皋陶作士以理民。帝舜朝,禹、伯夷、皋陶相與語帝前。皋陶述其謀曰:“信其道德,謀明輔和。”禹曰:“然,如何?”皋陶曰:“於!慎其身修,思長,敦序九族,眾明高翼,近可遠在已。”禹拜美言,曰:“然。”皋陶曰:“於!在知人,在安民。”禹曰:“吁!皆若是,惟帝其難之。知人則智,能官人;能安民則惠,黎民懷之。能知能惠,何憂乎驩兜,何遷乎有苗,何畏乎巧言善色佞人?”皋陶曰:“然,於!亦行有九德,亦言其有德。”乃言曰:“始事事,寬而栗,柔而立,願而共,治而敬,擾而毅,直而溫,簡而廉,剛而實,彊而義,章其有常,吉哉。日宣三德,蚤夜翊明有家。日嚴振敬六德,亮采有國。翕受普施,九德咸事,俊乂在官,百吏肅謹。毋教邪淫奇謀。非其人居其官,是謂亂天事。天討有罪,五刑五用哉。吾言厎可行乎?”禹曰:“女言致可績行。”皋陶曰:“余未有知,思贊道哉。”
21 夏本紀: 帝舜謂禹曰:“女亦昌言。”禹拜曰;“於,予何言!予思日孳孳。”皋陶難禹曰:“何謂孳孳?”禹曰:“鴻水滔天,浩浩懷山襄陵,下民皆服於水。予陸行乘車,水行乘舟,泥行乘橇,山行乘檋,行山刊木。與益予眾庶稻鮮食。以決九川致四海,浚畎澮致之川。與稷予眾庶難得之食。食少,調有餘補不足,徙居。眾民乃定,萬國為治。”皋陶曰:“然,此而美也。”
22 夏本紀: 禹曰:“於,帝!慎乃在位,安爾止。輔德,天下大應。清意以昭待上帝命,天其重命用休。”帝曰:“吁,臣哉,臣哉!臣作朕股肱耳目。予欲左右有民,女輔之。余欲觀古人之象。日月星辰,作文繡服色,女明之。予欲聞六律五聲八音,來始滑,以出入五言,女聽。予即辟,女匡拂予。女無面諛。退而謗予。敬四輔臣。諸眾讒嬖臣,君德誠施皆清矣。”禹曰:“然。帝即不時,布同善惡則毋功。”
23 夏本紀: 帝曰:“毋若丹朱傲,維慢游是好,毋水行舟,朋淫于家,用絕其世。予不能順是。”禹曰:“予(辛壬)娶涂山,[辛壬]癸甲,生啟予不子,以故能成水土功。輔成五服,至于五千里,州十二師,外薄四海,咸建五長,各道有功。苗頑不即功,帝其念哉。”帝曰:“道吾德,乃女功序之也。”
24 夏本紀: 皋陶於是敬禹之德,令民皆則禹。不如言,刑從之。舜德大明。
25 夏本紀: 於是夔行樂,祖考至,群后相讓,鳥獸翔舞,簫韶九成,鳳皇來儀,百獸率舞,百官信諧。帝用此作歌曰:“陟天之命,維時維幾。”乃歌曰:“股肱喜哉,元首起哉,百工熙哉!”皋陶拜手稽首揚言曰:“念哉,率為興事,慎乃憲,敬哉!”乃更為歌曰:“元首明哉,股肱良哉,庶事康哉!”(舜)又歌曰:“元首叢脞哉,股肱惰哉,萬事墮哉!”帝拜曰:“然,往欽哉!”於是天下皆宗禹之明度數聲樂,為山川神主。
26 夏本紀: 帝舜薦禹於天,為嗣。十七年而帝舜崩。三年喪畢,禹辭辟舜之子商均於陽城。天下諸侯皆去商均而朝禹。禹於是遂即天子位,南面朝天下,國號曰夏后,姓姒氏。
27 夏本紀: 帝禹立而舉皋陶薦之,且授政焉,而皋陶卒。封皋陶之後於英、六,或在許。而後舉益,任之政。
28 夏本紀: 十年,帝禹東巡狩,至于會稽而崩。以天下授益。三年之喪畢,益讓帝禹之子啟,而辟居箕山之陽。禹子啟賢,天下屬意焉。及禹崩,雖授益,益之佐禹日淺,天下未洽。故諸侯皆去益而朝啟,曰:“吾君帝禹之子也”。於是啟遂即天子之位,是為夏后帝啟。
29 夏本紀: 夏后帝啟,禹之子,其母涂山氏之女也。
30 夏本紀: 有扈氏不服,啟伐之,大戰於甘。將戰,作甘誓,乃召六卿申之。啟曰:“嗟!六事之人,予誓告女:有扈氏威侮五行,怠棄三正,天用勦絕其命。今予維共行天之罰。左不攻于左,右不攻于右,女不共命。御非其馬之政,女不共命。用命,賞于祖;不用命,僇于社,予則帑僇女。”遂滅有扈氏。天下咸朝。
31 夏本紀: 夏后帝啟崩,子帝太康立。帝太康失國,昆弟五人,須于洛汭,作五子之歌。
32 夏本紀: 太康崩,弟中康立,是為帝中康。帝中康時,羲、和湎淫,廢時亂日。胤往征之,作胤征。
33 夏本紀: 中康崩,子帝相立。帝相崩,子帝少康立。帝少康崩,子帝予立。帝予崩,子帝槐立。帝槐崩,子帝芒立。帝芒崩,子帝泄立。帝泄崩,子帝不降立。帝不降崩,弟帝扃立。帝扃崩,子帝廑立。帝廑崩,立帝不降之子孔甲,是為帝孔甲。帝孔甲立,好方鬼神,事淫亂。夏后氏德衰,諸侯畔之。天降龍二,有雌雄,孔甲不能食,未得豢龍氏。陶唐既衰,其后有劉累,學擾龍于豢龍氏,以事孔甲。孔甲賜之姓曰御龍氏,受豕韋之後。龍一雌死,以食夏后。夏后使求,懼而遷去。
34 夏本紀: 孔甲崩,子帝皋立。帝皋崩,子帝發立。帝發崩,子帝履癸立,是為桀。帝桀之時,自孔甲以來而諸侯多畔夏,桀不務德而武傷百姓,百姓弗堪。乃召湯而囚之夏臺,已而釋之。湯修德,諸侯皆歸湯,湯遂率兵以伐夏桀。桀走鳴條,遂放而死。桀謂人曰:“吾悔不遂殺湯於夏臺,使至此。”湯乃踐天子位,代夏朝天下。湯封夏之後,至周封於杞也。
35 夏本紀: 太史公曰:禹為姒姓,其後分封,用國為姓,故有夏后氏、有扈氏、有男氏、斟尋氏、彤城氏、褒氏、費氏、杞氏、繒氏、辛氏、冥氏、斟(氏)戈氏。孔子正夏時,學者多傳夏小正云。自虞、夏時,貢賦備矣。或言禹會諸侯江南,計功而崩,因葬焉,命曰會稽。會稽者,會計也。
史記 (사기, Shǐjì) 司馬遷 (사마천)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Alternative Names (異名):
史记(Shǐjì), 太史公書(태사공서), 太史公記(태사공기)
구분: 통사
저자: 사마 천(司馬遷)
시대: 중국 전한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황제(黃帝)~한나라 무제 태초년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
中国司马迁所著。 《史记》是中国的第一部通史。
Alternative Names (異名):
史记(Shǐjì), 太史公書(태사공서), 太史公記(태사공기)
구분: 통사
저자: 사마 천(司馬遷)
시대: 중국 전한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황제(黃帝)~한나라 무제 태초년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
中国司马迁所著。 《史记》是中国的第一部通史。
Location:
China
三國演義 (Sānguóyǎnyì) 第060回
三國演義(Sānguóyǎnyì)
Romance of Three Kingdoms
第059回 第060回 張永年反難楊修 龐士元議取西蜀 第061回
卻說那進計於劉璋者,乃益州別駕,姓張,名松,字永年。其人生得額钁頭尖,鼻偃齒露,身短不滿五尺,言語有若銅鐘。劉璋問曰:「別駕有何高見,可解張魯之危?」松曰:「某聞許都曹操,掃蕩中原。呂布,二袁,皆為所滅;近又破馬超;天下無敵矣。主公可備進獻之物,松親往許都,說曹操興兵取漢中,以圖張魯。則魯拒敵不暇,何敢復窺蜀中耶?」
Romance of Three Kingdoms
第059回 第060回 張永年反難楊修 龐士元議取西蜀 第061回
卻說那進計於劉璋者,乃益州別駕,姓張,名松,字永年。其人生得額钁頭尖,鼻偃齒露,身短不滿五尺,言語有若銅鐘。劉璋問曰:「別駕有何高見,可解張魯之危?」松曰:「某聞許都曹操,掃蕩中原。呂布,二袁,皆為所滅;近又破馬超;天下無敵矣。主公可備進獻之物,松親往許都,說曹操興兵取漢中,以圖張魯。則魯拒敵不暇,何敢復窺蜀中耶?」
三國演義 (Sānguóyǎnyì) 第015回
三國演義(Sānguóyǎnyì)
第014回 第015回 太史慈酣鬥小霸王 孫伯符大戰嚴白虎 第016回
卻說張飛拔劍要自刎,玄德向前抱住,奪劍擲地曰:「古人云:『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衣服破,尚可縫;手足斷,安可續?』吾三人桃園結義,不求同生,但願同死。今雖失了城池家小,安忍教兄弟中道而亡?況城池本非吾有;家眷雖被陷,呂布必不謀害,尚可設計救之。賢弟一時之誤,何至遽欲捐生耶!」說罷大哭。關、張俱感泣。
且說袁術知呂布襲了徐州,星夜差人至呂布處,許以糧五萬斛,馬五百匹,金銀一萬兩,綵緞一千疋,使夾攻劉備。布喜,令高順領兵五萬襲玄德之後。玄德聞得此信,乘陰雨撤兵,棄盱眙而走,思欲東取廣陵。比及高順軍來,玄德已去。高順與紀靈相見,就索所許之物。靈曰:「公且回軍,容某見主公計之。」高順乃別紀靈回軍,見呂布具述紀靈語。
布正在遲疑,忽有袁術書至。書意云:「高順雖來,而劉備未除;且待捉了劉備,那時方以所許之物相送。」布怒罵袁術失信,欲起兵伐之。陳宮曰:「不可。術據壽春,兵多糧廣,不可輕敵。不如請玄德還屯小沛,使為我羽翼。他日令玄德為先鋒,那時先取袁術,後取袁紹,可縱橫天下矣。」布聽其言,令人齎書迎玄德回。
卻說玄德引兵東取廣陵,被袁術劫寨,折兵大半;回來正遇呂布之使,呈上書札,玄德大喜。關、張曰:「呂布乃無義之人,不可信也。」玄德曰:「彼既以好情待我,奈何疑之?」遂來到徐州。布恐玄德疑惑,先令人送還家眷。甘、糜二夫人見玄德,具說呂布令兵把定宅門,禁諸人不得入;又常使侍妾送物,未嘗有缺。玄德謂關、張曰:「我知呂布必不害我家眷也。」乃入城謝呂布。張飛恨呂布,不肯隨往,先奉二嫂往小沛去了。
玄德入見呂布拜謝。呂布曰:「我非欲奪城;因令弟張飛在此恃酒殺人,恐有失事,故來守之耳。」玄德曰:「備欲讓兄久矣。」布假意仍讓玄德。玄德力辭,還屯小沛住。關、張心中不平。玄德曰:「屈身守分,以待天時,不可與命爭也。」呂布令人送糧米緞疋。自此兩家和好,不在話下。
卻說袁術大宴將士於壽春。人報孫策征廬江太守陸康,得勝而回。術喚策至,策拜於堂下。問勞已畢,便令侍坐飲宴。原來孫策自父喪之後,退居江南,禮賢下士,後因陶謙與策母舅丹陽太守吳璟不和,策乃移母並家屬居於曲阿,自己卻投袁術。術甚愛之,常歎曰:「使術有子如孫郎,死復何恨!」因使為懷義校尉,引兵攻涇縣,太師祖郎得勝。術見策勇,復使攻陸康,今又得勝而回。
當日筵散,策歸營寨。見術席間相待之禮甚傲,心中鬱悶,乃步月於中庭。因思父孫堅如此英雄,我今淪落至此,不覺於聲大哭。忽見一人自外而入,大笑曰:「伯符何故如此?尊父在日,多曾用我。君若有不決之事,何不問我,乃自哭耶?」策視之,乃丹陽故鄣人:姓朱,名治,字君理;孫堅舊從事官也。策收淚而延之坐曰:「策所哭者,恨不能繼父之志耳。」治曰:「君何不告袁公路,借兵往江東,假名救吳璟,實圖大業,而乃久困於人之下乎?」
正商議間,一人忽入曰:「公等所謀,吾已知之。吾手下有精壯百人,暫助伯符一臂之力。」策視其人,乃袁術謀士,汝南細陽人:姓呂,名範,字子衡。策大喜,延坐共議。呂範曰:「只怕袁公路不肯借兵。」策曰:「吾有亡父留下傳國玉璽,以為質當。」範曰:「公路欲得此久矣!以此相質,必肯發兵。」
三人計議已定。次日,策入見袁術,哭拜曰:「父讎不能報,今母舅吳璟,又為揚州刺史劉繇所逼;策老母家小,皆在曲阿,必將被害;策敢借雄兵數千,渡江救難省親。恐明公不信,有亡父遺下玉璽,權為質當。」術聞有玉璽,取而視之,大喜曰:「吾非要你玉璽,今且權留在此。我借兵三千、馬五百匹與你。平定之後,可速回來。你職位卑微,難掌大權。我表你為折衝校尉殄寇將軍,剋日領兵便行。」
策拜謝,遂引軍馬,帶領朱治,呂範,舊將程普,黃蓋,韓當等,擇日起兵。行至歷陽,見一軍到。當先一人:姿質風流,儀容秀麗;見了孫策,下馬便拜。策視其人,乃廬江舒城人:姓周,名瑜,字公瑾。原來孫堅討董卓之時,移家舒城,瑜與孫策同年,交情甚密,因結為昆仲。策長瑜兩月,瑜以兄事策。瑜叔周尚,為丹陽太守,今往省親,到此與策相遇。
策見瑜大喜,訴以衷情。瑜曰:「某願施犬馬之力,共圖大事。」策喜曰:「吾得公瑾,大事諧矣。」便令與朱治,呂範等相見。瑜謂策曰:「吾兄欲濟大事,亦知江東有二張乎?」策曰:「何為『二張』?」瑜曰:「一人乃彭城張昭,字子布;一人乃廣陵張紘,字子綱:二人皆有經天緯地之才,因避亂隱居於此。吾兄何不聘之?」策喜,即便令人齎禮往聘,俱辭不至。策乃親到其家,與語大悅,力聘之,二人許允。策遂拜張昭為長史,兼撫軍中郎將;張紘為參謀正議校尉;商議攻擊劉繇。
卻說劉繇字正禮,東萊牟平人也,亦是漢室宗親,太尉劉寵之姪,兗州刺史劉岱之弟;舊為揚州刺史,屯於壽春,被袁術趕過江東,故來曲阿。當下聞孫策兵至,急聚眾將商議。部將張英曰:「某領一軍屯於牛渚,縱有百萬之兵,亦不能近。」言未畢,帳下一人高叫曰:「某願為前部先鋒。」眾視之,乃東萊黃縣人太史慈也。慈自解了北海之圍後,便來見劉繇,繇留於帳下。當日聽得孫策來到,願為前部先鋒。繇曰:「你年尚輕,未可為大將,只在吾左右聽命。」太史慈不喜而退。
張英領兵至牛渚,積糧十萬於邸閣。孫策引兵到,張英出迎。兩軍會於牛渚灘上。孫策出馬,張英大罵,黃蓋便出與張英戰。不數合,忽然張英軍中大亂,報說寨中有人放火。張英急回軍,孫策引軍前來,乘勢掩殺。張英棄了牛渚,望深山而逃。
原來那寨後放火的,乃是兩員健將:一人乃九江壽春人,姓蔣,名欽,字公奕;一人乃九江下蔡人,姓周,名泰,字幼平。二人皆遭世亂,聚人在揚子江中,劫掠為生;久聞孫策為江東豪傑,能招賢納士,故特引其黨三百餘人,前來相投。策大喜,用為車前校尉,收得牛渚邸閣糧食、軍器,並降卒四千餘人,遂進兵神亭。
卻說張英敗回見劉繇,繇怒欲斬之。謀士笮融,薛禮勸免,使屯兵零陵城拒敵。繇自領兵於神亭嶺南下營,孫策於嶺北下營。策問土人曰:「近山有漢光武廟否?」土人曰:「有廟在嶺上。」策曰:「吾夜夢光武召我相見,當往祈之。」長史張昭曰:「不可:嶺南乃劉繇寨,倘有伏兵,奈何?」策曰:「神人佑我,吾何懼焉?」遂披掛綽鎗上馬,引程普,黃蓋,韓當,蔣欽,周泰等共十三騎,出寨上嶺,到廟焚香。下馬參拜已畢,策向前跪祝曰:「若孫策能於江東立業,復興故父之基,即當重修廟宇,四時祭祀。」
祝畢,出廟上馬,回顧眾將曰:「吾欲過嶺,探看劉繇寨柵。」諸將皆以為不可。策不從,遂同上嶺,南望村林。早有伏路小軍飛報劉繇。繇曰:「此必是孫策誘敵之計,不可追之。」太史慈踴躍曰:「此時不捉孫策,更待何時?」遂不候劉繇將令,竟自披掛上馬,綽鎗出營,大叫曰:「有膽氣者,都跟我來!」諸將不動。惟有一小將曰:「太史慈真猛將也!吾可助之!」拍馬同行。眾將皆笑。
卻說孫策看了半晌,方始回馬。正行過嶺,只聽得嶺上叫:「孫策休走!」策回頭視之,見兩匹馬飛下嶺來。策將十三騎一齊擺開。策橫鎗立馬於嶺下待之。太史慈高叫曰:「那個是孫策?」策曰:「你是何人?」答曰:「我便是東萊太史慈也,特來捉孫策!」策笑曰:「只我便是。你兩個一齊來併我一個,我不懼你!我若怕你,非孫伯符也!」慈曰:「你便眾人都來,我亦不怕!」縱馬橫鎗,直取孫策。策挺鎗來迎。兩馬相交,戰五十合,不分勝負,程普等暗暗稱奇。
慈見孫策鎗法無半點兒滲漏,乃佯輸詐敗,引孫策趕來。慈卻不由舊路上嶺,竟轉過山背後。策趕到,大喝曰:「走的不算好漢!」慈心中自忖:「這廝有十二從人,我只一個,便活捉了他,也被眾人奪去。再引一程,教這廝沒尋處,方好下手。」於是且戰且走。策那裏肯捨,一直趕到平川之地。慈兜回馬再戰,又到五十合。策一鎗搠去,慈閃過,挾住鎗;慈也一鎗搠去,策亦閃過,挾住鎗。兩個用力只一拖,都滾下馬來。馬不知走的那裏去了。兩個棄了鎗,揪住廝打,戰袍扯得粉碎。策手快,掣了太史慈背上的短戟,慈亦掣了策頭上的兜鍪。策把戟來刺慈,慈把兜鍪遮架。
忽然喊聲後起,乃劉繇接應軍到來,約有千餘。策正慌急,程普等十二騎亦衝到,策與慈方纔放手。慈於軍中討了一匹馬,取了鎗,上馬復來。孫策的馬,卻是程普收得,策亦取鎗上馬。劉繇一千餘軍,和程普等十二騎混戰,逶迤殺到神亭嶺下。喊聲起處,周瑜領軍來到。劉繇自引大軍殺下嶺來。時近黃昏,風雨暴至,兩下各自收軍。
次日,孫策引軍到劉繇營前,劉繇引軍出迎。兩陣圓處,孫策把鎗挑太史慈的小戟於陣前,令軍士大叫曰:「太史慈若不是走的快,已被刺死了!」太史慈亦將孫策兜鍪挑於陣前,也令軍士大叫曰:「孫策頭已在此!」
兩軍吶喊,這邊誇勝,那邊道強。太史慈出馬,要與孫策決個勝負,策遂欲出。程普曰:「不須主公勞力,某自擒之。」程普出到陣前,太史慈曰:「你非我之敵手,只教孫策出馬來!」程普大怒,挺鎗直取太史慈。兩馬相交,戰到三十合,劉繇急鳴金收軍。太史慈曰:「我正要捉拿賊將,何故收軍?」劉繇曰:「人報周瑜領軍襲取曲阿,有廬江松滋人陳武,字子烈,接應周瑜入去。吾家基業已失,不可久留。速往秣陵,會薛禮,笮融軍馬,急來接應。」
太史慈跟著劉繇退軍,孫策不趕,收住人馬。長史張昭曰:「彼軍被周瑜襲取曲阿,無戀戰之心,今夜正好劫營。」孫策然之,當夜分軍五路,長驅大進。劉繇軍兵大敗,眾皆四紛五落。太史慈獨力難當,引十數騎連夜投涇縣去了。
卻說孫策又得陳武為輔:其人身長七尺,面黃睛赤,形容古怪。策甚敬愛之,拜為校尉,使作先鋒,攻薛禮。武引十數騎突入陣去,斬首級五十餘顆。薛禮閉門不敢出。
策正攻城,忽有人報劉繇會合笮融去取牛渚。孫策大怒,自提大軍竟奔牛渚。劉繇,笮融二人出馬迎敵。孫策曰:「吾今到此,你如何不降?」劉繇背後一人挺鎗出馬,乃部將於糜也;與策戰不三合,被策生擒過去,撥馬回陣。繇將樊能,見捉了於糜,挺鎗來趕。那鎗剛搠到策後心,策陣上軍士大叫:「背後有人暗萛!」策回頭,忽見樊能馬到,乃大喝一聲,聲如巨雷。樊能驚駭,倒翻身撞下馬來,破頭而死。策到門旗下將於糜丟下,已被挾死。一霎時挾死一將,喝死一將;自此,人皆呼孫策為「小霸王」。
當日劉繇兵大敗,人馬大半降策。策斬首萬餘。劉繇與笮融走豫章投劉表去了。孫策還兵復攻秣陵,親到城壕邊,招諭薛禮投降。城上暗放一冷箭,正中孫策左腿,翻身落馬。眾將急救起,還營拔箭,以金瘡藥傅之。策令軍中詐稱主將中箭身死。軍中舉哀,拔寨齊起。
薛禮聽知孫策已死,連夜起城內之軍,與驍將張英,陳橫殺出城來追之。忽然伏兵四起,孫策當先出馬,高聲大叫曰:「孫郎在此!」眾軍皆驚,盡棄鎗刀,拜於地下。策令休殺一人。張英撥馬回走,被陳武一鎗刺死。陳橫被蔣欽一箭射死。薛禮死於亂軍中。策入秣陵,安輯居民;移兵至涇縣來捉太史慈。
卻說太史慈招得精壯二千餘人,並所部兵,正要來與劉繇報讎。孫策與周瑜商議活捉太史慈之計。瑜令三面攻縣,只留東門放走;離城二十五里,三路各伏一軍,太史慈到那裏,人馬睏乏,必然被擒。原來太史慈所招軍大半是山野之民,不諳紀律。涇縣城頭,苦不甚高。夜孫策命陳武短衣持刀,首先爬上城放火。太史慈見城上火起,上馬投東門走,背後孫策引軍趕來。
太史慈正走,後軍趕至三十里,卻不趕了。太史慈走了五十里,人困馬乏,蘆葦之中,喊聲忽起。慈急待走,兩下裏絆馬索齊來,將馬絆翻了,生擒太史慈,解投大寨。策知解到太史慈,親自出營喝散士卒,自釋其縛,將自己錦袍衣之,請入寨中,謂曰:「吾知子義真丈夫也。劉繇蠢輩,不能用為大將,以致此敗。」
慈見策待之甚厚,遂請降。策執慈手笑曰:「神亭相戰之時,若公獲我,還相害否?」慈笑曰:「未可知也。」策大笑,請入帳,邀之上坐,設宴款待。慈曰:「劉君新破,士卒離心,某欲自往收拾餘眾,以助明公,不識能相信否?」策起謝曰:「此誠策所願也。今與公約:明日日中,望公來還。」慈應諾而去。諸將曰:「太史慈此去必不來矣。」策曰:「子義乃信義之士,必不背我。」眾皆未信。
次日,立竿於營門以候日影。恰將日中,太史慈引一千餘眾到寨。孫策大喜。眾皆服策之知人。於是孫策聚數萬之眾,下江東,安民恤眾,投者無數。江東之民,皆呼策為孫郎。但聞孫郎兵至,皆喪膽而走。及策軍到,並不許一人擄掠,雞犬不驚,人民皆悅,齎牛酒到寨勞軍。策以金帛答之,懽聲遍野。其劉繇舊軍願從軍者聽從,不願為軍者給賞歸農。江南之民,無不仰頌。由是兵勢大盛。策乃迎母叔諸弟俱歸曲阿,使弟孫權與周泰守宣城。策領兵南取吳郡。
時有嚴白虎,自稱東吳德王據吳郡,遣部將守住烏程、嘉興。當日白虎聞策兵至,令弟嚴輿出兵,會於楓橋。輿橫刀立馬於橋上。有人報入中軍,策便欲出。張紘諫曰:「夫主將乃三軍之所繫命,不宜輕敵小寇。願將軍自重。」策謝曰:「先生之言如金石;但恐不親冒矢石,則將士不用命耳。」遂遣韓當出馬。
比及韓當到橋上時,蔣欽,陳武早駕小舟從河岸邊殺過橋來,亂箭射倒岸上軍,二人飛身上岸砍殺,嚴輿退走。韓當引軍直殺到閶門下,賊退入城裏去了。策分兵水陸並進,圍住吳城。一困三日,無人出戰。策引眾軍到閶門外招諭,城上一員裨將,左手托定護梁,右手指著城下大罵。太史慈就馬上拈弓取箭,顧軍將曰:「看我射中這廝左手!」
說聲未絕,弓弦響處,果然射個正中,把那將的左手射透,反牢釘在護樑上。城上城下見者,無不喝采。
眾人救這人下城。白虎大驚曰:「彼軍有如此人,安能敵乎!」遂商量求和。次日,使嚴輿出城,來見孫策。策請輿入帳飲酒。酒酣,問輿曰:「令兄意欲如何?」輿曰:「欲與將軍平分江東。」策大怒曰:「鼠輩安敢與吾相等!」命斬嚴輿。輿拔劍起身,策飛劍砍之,應手而倒,割下首級,令送入城中。白虎料敵不過,棄城而走。
策進兵追襲,黃蓋攻取嘉興,太史慈攻取烏程,數州皆平。白虎奔餘杭,於路劫掠,被土人凌操領鄉人殺敗,望會稽而走。凌操父子二人來接孫策,策使為從征校尉,遂同引兵渡江。嚴白虎聚寇,分佈於西津渡口。程普與戰,復大敗之,連夜趕到會稽。
會稽太守王朗,欲引兵救白虎。忽一人出曰:「不可。孫策用仁義之師,白虎乃暴虐之眾,還宜擒白虎以獻孫策。」朗視之,乃會稽餘姚人:姓虞,名翻,字仲翔,見為郡吏。朗怒叱之,翻長歎而出。朗遂引兵會合白虎,同陳兵於山陰之野。兩陣對圓,孫策出馬,謂王朗曰:「吾興仁義之兵,來安浙江,汝何故助賊?」朗罵曰:「汝貪心不足?既得吳郡,而又強併吾界!今日特與嚴氏報讎!」
孫策大怒,正待交戰,太史慈早出。王朗拍馬舞刀,與慈戰。不數合朗將周昕,殺出助戰;孫策陣中黃蓋,飛馬接住周昕交鋒。兩下鼓聲大震,互相鏖戰。忽王朗陣後先亂,一彪軍從背後抄來。朗大驚,急回馬來迎:原來是周瑜與程普引軍刺斜殺來,前後來攻。王朗寡不敵眾,與白虎,周昕,殺條血路,走入城中;拽起弔橋,堅閉城門。
孫策大軍乘勢趕到城下,分佈眾軍,四門攻打。王朗在城中見孫策攻城甚急,欲再出兵決一死戰。嚴白虎曰:「孫策兵勢甚大,足下只宜深溝高壘,堅壁勿出。不消一月,彼軍糧盡,自然退走。那時乘虛掩之,可不戰而破也。」朗依其議,乃固守會稽城而不出。
孫策一連攻了數日,不能成功,乃與眾將計議。孫靜曰:「王朗負固守城,難可卒拔;會稽錢糧,大半屯於查瀆;其地離此數十里,莫若以兵先據其內:所謂攻其無備,出其不意也。」策大喜曰:「叔父妙用,足破賊人矣!」即下令於各門燃火,虛張旗號,設為疑兵,連夜撤圍南去。周瑜進曰:「主公大兵一起,王朗必然出城來趕,可用奇兵勝之。」策曰:「吾今準備了,取城只在今夜。」遂令軍馬起行。
卻說王朗聞報孫策軍馬退去,自引眾人來敵樓上觀望;見城下煙火併起,旌旗不雜,心下遲疑。周昕曰:「孫策走矣,特設此計以疑我耳。可出兵襲之。」嚴白虎曰:「孫策此去,莫非要去查瀆。我令部兵與周將軍追之。」朗曰:「查瀆是我屯糧之所,正須隄防。汝引兵先行,吾隨後接應。」白虎與周昕領五千兵出城追趕。將近初更,離城二十餘里,忽密林裏一鼓響,火把齊明。白虎大驚,便勒馬回走。一將當先攔住,火光中視之,乃孫策也。周昕舞刀來迎,被策一鎗刺死。餘眾皆降。白虎殺條血路,望餘杭而走。
王朗聽知前軍已敗,不敢入城,引部下奔逃海隅去了。孫策復回大軍,乘勢取了城池,安定人民。不隔一日,只見一人將著嚴白虎首級來孫策軍前投獻。策視其人:身長八尺,面方口闊。問其姓名,乃會稽餘姚人:姓董,名襲,字元代。策喜,命為別部司馬。自是東路皆平,令叔孫靜守之,令朱治為吳郡太守,收軍回江東。
卻說孫權與周泰守宣城,忽山賊竊發,四面殺至。時值更深,不及抵敵,泰抱權上馬。賊用刀來砍。泰赤體步行,提刀殺賊,砍殺十餘人。隨後一賊躍馬挺鎗直取周泰,被泰扯住鎗,拖下馬來,奪了鎗馬,殺條血路,救出孫權。餘賊遠遁。周泰身被十二鎗,金瘡發脹,命在須臾。
策聞之大驚。帳下董襲曰:「某曾與海寇相持,身遭數鎗,得會稽一個賢郡吏虞翻薦一醫者,半月而愈。」策曰:「虞翻莫非虞仲翔乎?」襲曰:「然。」策曰:「此賢士也,我當用之。」乃令張昭與董襲同往聘請虞翻。翻至,策優禮相待,拜為功曹,因言及求醫之意。翻曰:「此人乃沛國譙郡人:姓華,名佗,字元化。真當世之神醫也。當引之來見。」
不一日引至。策見其人:童顏鶴髮,飄然有出世之姿;乃待為上賓,請視周泰瘡。佗曰:「此易事耳。」投之以藥,一月而愈。策大喜,厚謝華佗。遂進兵殺除山賊。江南皆平。孫策分撥將士,守把各處隘口;一面寫表申奏朝廷;一面結交曹操;一面使人致書與袁術取玉璽。
卻說袁術暗有稱帝之心,乃回書推託不還;急聚長史楊大將,都督張勳,紀靈,橋蕤,上將雷薄,陳蘭,等三十餘人,商議曰:「孫策借我軍馬起事,今日盡得江東地面,乃不思報本,而反來索璽,殊為無禮。當以何策圖之?」長史楊大將曰:「孫策據長江之險,兵精糧廣,未可圖也。今當先伐劉備,以報前日無故相攻之恨,然後圖取孫策未遲。某獻一計,使備即日就擒。」正是:
不去江東圖虎豹,
卻來徐郡鬥蛟龍。
不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第014回 第015回 太史慈酣鬥小霸王 孫伯符大戰嚴白虎 第016回
卻說張飛拔劍要自刎,玄德向前抱住,奪劍擲地曰:「古人云:『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衣服破,尚可縫;手足斷,安可續?』吾三人桃園結義,不求同生,但願同死。今雖失了城池家小,安忍教兄弟中道而亡?況城池本非吾有;家眷雖被陷,呂布必不謀害,尚可設計救之。賢弟一時之誤,何至遽欲捐生耶!」說罷大哭。關、張俱感泣。
且說袁術知呂布襲了徐州,星夜差人至呂布處,許以糧五萬斛,馬五百匹,金銀一萬兩,綵緞一千疋,使夾攻劉備。布喜,令高順領兵五萬襲玄德之後。玄德聞得此信,乘陰雨撤兵,棄盱眙而走,思欲東取廣陵。比及高順軍來,玄德已去。高順與紀靈相見,就索所許之物。靈曰:「公且回軍,容某見主公計之。」高順乃別紀靈回軍,見呂布具述紀靈語。
布正在遲疑,忽有袁術書至。書意云:「高順雖來,而劉備未除;且待捉了劉備,那時方以所許之物相送。」布怒罵袁術失信,欲起兵伐之。陳宮曰:「不可。術據壽春,兵多糧廣,不可輕敵。不如請玄德還屯小沛,使為我羽翼。他日令玄德為先鋒,那時先取袁術,後取袁紹,可縱橫天下矣。」布聽其言,令人齎書迎玄德回。
卻說玄德引兵東取廣陵,被袁術劫寨,折兵大半;回來正遇呂布之使,呈上書札,玄德大喜。關、張曰:「呂布乃無義之人,不可信也。」玄德曰:「彼既以好情待我,奈何疑之?」遂來到徐州。布恐玄德疑惑,先令人送還家眷。甘、糜二夫人見玄德,具說呂布令兵把定宅門,禁諸人不得入;又常使侍妾送物,未嘗有缺。玄德謂關、張曰:「我知呂布必不害我家眷也。」乃入城謝呂布。張飛恨呂布,不肯隨往,先奉二嫂往小沛去了。
玄德入見呂布拜謝。呂布曰:「我非欲奪城;因令弟張飛在此恃酒殺人,恐有失事,故來守之耳。」玄德曰:「備欲讓兄久矣。」布假意仍讓玄德。玄德力辭,還屯小沛住。關、張心中不平。玄德曰:「屈身守分,以待天時,不可與命爭也。」呂布令人送糧米緞疋。自此兩家和好,不在話下。
卻說袁術大宴將士於壽春。人報孫策征廬江太守陸康,得勝而回。術喚策至,策拜於堂下。問勞已畢,便令侍坐飲宴。原來孫策自父喪之後,退居江南,禮賢下士,後因陶謙與策母舅丹陽太守吳璟不和,策乃移母並家屬居於曲阿,自己卻投袁術。術甚愛之,常歎曰:「使術有子如孫郎,死復何恨!」因使為懷義校尉,引兵攻涇縣,太師祖郎得勝。術見策勇,復使攻陸康,今又得勝而回。
當日筵散,策歸營寨。見術席間相待之禮甚傲,心中鬱悶,乃步月於中庭。因思父孫堅如此英雄,我今淪落至此,不覺於聲大哭。忽見一人自外而入,大笑曰:「伯符何故如此?尊父在日,多曾用我。君若有不決之事,何不問我,乃自哭耶?」策視之,乃丹陽故鄣人:姓朱,名治,字君理;孫堅舊從事官也。策收淚而延之坐曰:「策所哭者,恨不能繼父之志耳。」治曰:「君何不告袁公路,借兵往江東,假名救吳璟,實圖大業,而乃久困於人之下乎?」
正商議間,一人忽入曰:「公等所謀,吾已知之。吾手下有精壯百人,暫助伯符一臂之力。」策視其人,乃袁術謀士,汝南細陽人:姓呂,名範,字子衡。策大喜,延坐共議。呂範曰:「只怕袁公路不肯借兵。」策曰:「吾有亡父留下傳國玉璽,以為質當。」範曰:「公路欲得此久矣!以此相質,必肯發兵。」
三人計議已定。次日,策入見袁術,哭拜曰:「父讎不能報,今母舅吳璟,又為揚州刺史劉繇所逼;策老母家小,皆在曲阿,必將被害;策敢借雄兵數千,渡江救難省親。恐明公不信,有亡父遺下玉璽,權為質當。」術聞有玉璽,取而視之,大喜曰:「吾非要你玉璽,今且權留在此。我借兵三千、馬五百匹與你。平定之後,可速回來。你職位卑微,難掌大權。我表你為折衝校尉殄寇將軍,剋日領兵便行。」
策拜謝,遂引軍馬,帶領朱治,呂範,舊將程普,黃蓋,韓當等,擇日起兵。行至歷陽,見一軍到。當先一人:姿質風流,儀容秀麗;見了孫策,下馬便拜。策視其人,乃廬江舒城人:姓周,名瑜,字公瑾。原來孫堅討董卓之時,移家舒城,瑜與孫策同年,交情甚密,因結為昆仲。策長瑜兩月,瑜以兄事策。瑜叔周尚,為丹陽太守,今往省親,到此與策相遇。
策見瑜大喜,訴以衷情。瑜曰:「某願施犬馬之力,共圖大事。」策喜曰:「吾得公瑾,大事諧矣。」便令與朱治,呂範等相見。瑜謂策曰:「吾兄欲濟大事,亦知江東有二張乎?」策曰:「何為『二張』?」瑜曰:「一人乃彭城張昭,字子布;一人乃廣陵張紘,字子綱:二人皆有經天緯地之才,因避亂隱居於此。吾兄何不聘之?」策喜,即便令人齎禮往聘,俱辭不至。策乃親到其家,與語大悅,力聘之,二人許允。策遂拜張昭為長史,兼撫軍中郎將;張紘為參謀正議校尉;商議攻擊劉繇。
卻說劉繇字正禮,東萊牟平人也,亦是漢室宗親,太尉劉寵之姪,兗州刺史劉岱之弟;舊為揚州刺史,屯於壽春,被袁術趕過江東,故來曲阿。當下聞孫策兵至,急聚眾將商議。部將張英曰:「某領一軍屯於牛渚,縱有百萬之兵,亦不能近。」言未畢,帳下一人高叫曰:「某願為前部先鋒。」眾視之,乃東萊黃縣人太史慈也。慈自解了北海之圍後,便來見劉繇,繇留於帳下。當日聽得孫策來到,願為前部先鋒。繇曰:「你年尚輕,未可為大將,只在吾左右聽命。」太史慈不喜而退。
張英領兵至牛渚,積糧十萬於邸閣。孫策引兵到,張英出迎。兩軍會於牛渚灘上。孫策出馬,張英大罵,黃蓋便出與張英戰。不數合,忽然張英軍中大亂,報說寨中有人放火。張英急回軍,孫策引軍前來,乘勢掩殺。張英棄了牛渚,望深山而逃。
原來那寨後放火的,乃是兩員健將:一人乃九江壽春人,姓蔣,名欽,字公奕;一人乃九江下蔡人,姓周,名泰,字幼平。二人皆遭世亂,聚人在揚子江中,劫掠為生;久聞孫策為江東豪傑,能招賢納士,故特引其黨三百餘人,前來相投。策大喜,用為車前校尉,收得牛渚邸閣糧食、軍器,並降卒四千餘人,遂進兵神亭。
卻說張英敗回見劉繇,繇怒欲斬之。謀士笮融,薛禮勸免,使屯兵零陵城拒敵。繇自領兵於神亭嶺南下營,孫策於嶺北下營。策問土人曰:「近山有漢光武廟否?」土人曰:「有廟在嶺上。」策曰:「吾夜夢光武召我相見,當往祈之。」長史張昭曰:「不可:嶺南乃劉繇寨,倘有伏兵,奈何?」策曰:「神人佑我,吾何懼焉?」遂披掛綽鎗上馬,引程普,黃蓋,韓當,蔣欽,周泰等共十三騎,出寨上嶺,到廟焚香。下馬參拜已畢,策向前跪祝曰:「若孫策能於江東立業,復興故父之基,即當重修廟宇,四時祭祀。」
祝畢,出廟上馬,回顧眾將曰:「吾欲過嶺,探看劉繇寨柵。」諸將皆以為不可。策不從,遂同上嶺,南望村林。早有伏路小軍飛報劉繇。繇曰:「此必是孫策誘敵之計,不可追之。」太史慈踴躍曰:「此時不捉孫策,更待何時?」遂不候劉繇將令,竟自披掛上馬,綽鎗出營,大叫曰:「有膽氣者,都跟我來!」諸將不動。惟有一小將曰:「太史慈真猛將也!吾可助之!」拍馬同行。眾將皆笑。
卻說孫策看了半晌,方始回馬。正行過嶺,只聽得嶺上叫:「孫策休走!」策回頭視之,見兩匹馬飛下嶺來。策將十三騎一齊擺開。策橫鎗立馬於嶺下待之。太史慈高叫曰:「那個是孫策?」策曰:「你是何人?」答曰:「我便是東萊太史慈也,特來捉孫策!」策笑曰:「只我便是。你兩個一齊來併我一個,我不懼你!我若怕你,非孫伯符也!」慈曰:「你便眾人都來,我亦不怕!」縱馬橫鎗,直取孫策。策挺鎗來迎。兩馬相交,戰五十合,不分勝負,程普等暗暗稱奇。
慈見孫策鎗法無半點兒滲漏,乃佯輸詐敗,引孫策趕來。慈卻不由舊路上嶺,竟轉過山背後。策趕到,大喝曰:「走的不算好漢!」慈心中自忖:「這廝有十二從人,我只一個,便活捉了他,也被眾人奪去。再引一程,教這廝沒尋處,方好下手。」於是且戰且走。策那裏肯捨,一直趕到平川之地。慈兜回馬再戰,又到五十合。策一鎗搠去,慈閃過,挾住鎗;慈也一鎗搠去,策亦閃過,挾住鎗。兩個用力只一拖,都滾下馬來。馬不知走的那裏去了。兩個棄了鎗,揪住廝打,戰袍扯得粉碎。策手快,掣了太史慈背上的短戟,慈亦掣了策頭上的兜鍪。策把戟來刺慈,慈把兜鍪遮架。
忽然喊聲後起,乃劉繇接應軍到來,約有千餘。策正慌急,程普等十二騎亦衝到,策與慈方纔放手。慈於軍中討了一匹馬,取了鎗,上馬復來。孫策的馬,卻是程普收得,策亦取鎗上馬。劉繇一千餘軍,和程普等十二騎混戰,逶迤殺到神亭嶺下。喊聲起處,周瑜領軍來到。劉繇自引大軍殺下嶺來。時近黃昏,風雨暴至,兩下各自收軍。
次日,孫策引軍到劉繇營前,劉繇引軍出迎。兩陣圓處,孫策把鎗挑太史慈的小戟於陣前,令軍士大叫曰:「太史慈若不是走的快,已被刺死了!」太史慈亦將孫策兜鍪挑於陣前,也令軍士大叫曰:「孫策頭已在此!」
兩軍吶喊,這邊誇勝,那邊道強。太史慈出馬,要與孫策決個勝負,策遂欲出。程普曰:「不須主公勞力,某自擒之。」程普出到陣前,太史慈曰:「你非我之敵手,只教孫策出馬來!」程普大怒,挺鎗直取太史慈。兩馬相交,戰到三十合,劉繇急鳴金收軍。太史慈曰:「我正要捉拿賊將,何故收軍?」劉繇曰:「人報周瑜領軍襲取曲阿,有廬江松滋人陳武,字子烈,接應周瑜入去。吾家基業已失,不可久留。速往秣陵,會薛禮,笮融軍馬,急來接應。」
太史慈跟著劉繇退軍,孫策不趕,收住人馬。長史張昭曰:「彼軍被周瑜襲取曲阿,無戀戰之心,今夜正好劫營。」孫策然之,當夜分軍五路,長驅大進。劉繇軍兵大敗,眾皆四紛五落。太史慈獨力難當,引十數騎連夜投涇縣去了。
卻說孫策又得陳武為輔:其人身長七尺,面黃睛赤,形容古怪。策甚敬愛之,拜為校尉,使作先鋒,攻薛禮。武引十數騎突入陣去,斬首級五十餘顆。薛禮閉門不敢出。
策正攻城,忽有人報劉繇會合笮融去取牛渚。孫策大怒,自提大軍竟奔牛渚。劉繇,笮融二人出馬迎敵。孫策曰:「吾今到此,你如何不降?」劉繇背後一人挺鎗出馬,乃部將於糜也;與策戰不三合,被策生擒過去,撥馬回陣。繇將樊能,見捉了於糜,挺鎗來趕。那鎗剛搠到策後心,策陣上軍士大叫:「背後有人暗萛!」策回頭,忽見樊能馬到,乃大喝一聲,聲如巨雷。樊能驚駭,倒翻身撞下馬來,破頭而死。策到門旗下將於糜丟下,已被挾死。一霎時挾死一將,喝死一將;自此,人皆呼孫策為「小霸王」。
當日劉繇兵大敗,人馬大半降策。策斬首萬餘。劉繇與笮融走豫章投劉表去了。孫策還兵復攻秣陵,親到城壕邊,招諭薛禮投降。城上暗放一冷箭,正中孫策左腿,翻身落馬。眾將急救起,還營拔箭,以金瘡藥傅之。策令軍中詐稱主將中箭身死。軍中舉哀,拔寨齊起。
薛禮聽知孫策已死,連夜起城內之軍,與驍將張英,陳橫殺出城來追之。忽然伏兵四起,孫策當先出馬,高聲大叫曰:「孫郎在此!」眾軍皆驚,盡棄鎗刀,拜於地下。策令休殺一人。張英撥馬回走,被陳武一鎗刺死。陳橫被蔣欽一箭射死。薛禮死於亂軍中。策入秣陵,安輯居民;移兵至涇縣來捉太史慈。
卻說太史慈招得精壯二千餘人,並所部兵,正要來與劉繇報讎。孫策與周瑜商議活捉太史慈之計。瑜令三面攻縣,只留東門放走;離城二十五里,三路各伏一軍,太史慈到那裏,人馬睏乏,必然被擒。原來太史慈所招軍大半是山野之民,不諳紀律。涇縣城頭,苦不甚高。夜孫策命陳武短衣持刀,首先爬上城放火。太史慈見城上火起,上馬投東門走,背後孫策引軍趕來。
太史慈正走,後軍趕至三十里,卻不趕了。太史慈走了五十里,人困馬乏,蘆葦之中,喊聲忽起。慈急待走,兩下裏絆馬索齊來,將馬絆翻了,生擒太史慈,解投大寨。策知解到太史慈,親自出營喝散士卒,自釋其縛,將自己錦袍衣之,請入寨中,謂曰:「吾知子義真丈夫也。劉繇蠢輩,不能用為大將,以致此敗。」
慈見策待之甚厚,遂請降。策執慈手笑曰:「神亭相戰之時,若公獲我,還相害否?」慈笑曰:「未可知也。」策大笑,請入帳,邀之上坐,設宴款待。慈曰:「劉君新破,士卒離心,某欲自往收拾餘眾,以助明公,不識能相信否?」策起謝曰:「此誠策所願也。今與公約:明日日中,望公來還。」慈應諾而去。諸將曰:「太史慈此去必不來矣。」策曰:「子義乃信義之士,必不背我。」眾皆未信。
次日,立竿於營門以候日影。恰將日中,太史慈引一千餘眾到寨。孫策大喜。眾皆服策之知人。於是孫策聚數萬之眾,下江東,安民恤眾,投者無數。江東之民,皆呼策為孫郎。但聞孫郎兵至,皆喪膽而走。及策軍到,並不許一人擄掠,雞犬不驚,人民皆悅,齎牛酒到寨勞軍。策以金帛答之,懽聲遍野。其劉繇舊軍願從軍者聽從,不願為軍者給賞歸農。江南之民,無不仰頌。由是兵勢大盛。策乃迎母叔諸弟俱歸曲阿,使弟孫權與周泰守宣城。策領兵南取吳郡。
時有嚴白虎,自稱東吳德王據吳郡,遣部將守住烏程、嘉興。當日白虎聞策兵至,令弟嚴輿出兵,會於楓橋。輿橫刀立馬於橋上。有人報入中軍,策便欲出。張紘諫曰:「夫主將乃三軍之所繫命,不宜輕敵小寇。願將軍自重。」策謝曰:「先生之言如金石;但恐不親冒矢石,則將士不用命耳。」遂遣韓當出馬。
比及韓當到橋上時,蔣欽,陳武早駕小舟從河岸邊殺過橋來,亂箭射倒岸上軍,二人飛身上岸砍殺,嚴輿退走。韓當引軍直殺到閶門下,賊退入城裏去了。策分兵水陸並進,圍住吳城。一困三日,無人出戰。策引眾軍到閶門外招諭,城上一員裨將,左手托定護梁,右手指著城下大罵。太史慈就馬上拈弓取箭,顧軍將曰:「看我射中這廝左手!」
說聲未絕,弓弦響處,果然射個正中,把那將的左手射透,反牢釘在護樑上。城上城下見者,無不喝采。
眾人救這人下城。白虎大驚曰:「彼軍有如此人,安能敵乎!」遂商量求和。次日,使嚴輿出城,來見孫策。策請輿入帳飲酒。酒酣,問輿曰:「令兄意欲如何?」輿曰:「欲與將軍平分江東。」策大怒曰:「鼠輩安敢與吾相等!」命斬嚴輿。輿拔劍起身,策飛劍砍之,應手而倒,割下首級,令送入城中。白虎料敵不過,棄城而走。
策進兵追襲,黃蓋攻取嘉興,太史慈攻取烏程,數州皆平。白虎奔餘杭,於路劫掠,被土人凌操領鄉人殺敗,望會稽而走。凌操父子二人來接孫策,策使為從征校尉,遂同引兵渡江。嚴白虎聚寇,分佈於西津渡口。程普與戰,復大敗之,連夜趕到會稽。
會稽太守王朗,欲引兵救白虎。忽一人出曰:「不可。孫策用仁義之師,白虎乃暴虐之眾,還宜擒白虎以獻孫策。」朗視之,乃會稽餘姚人:姓虞,名翻,字仲翔,見為郡吏。朗怒叱之,翻長歎而出。朗遂引兵會合白虎,同陳兵於山陰之野。兩陣對圓,孫策出馬,謂王朗曰:「吾興仁義之兵,來安浙江,汝何故助賊?」朗罵曰:「汝貪心不足?既得吳郡,而又強併吾界!今日特與嚴氏報讎!」
孫策大怒,正待交戰,太史慈早出。王朗拍馬舞刀,與慈戰。不數合朗將周昕,殺出助戰;孫策陣中黃蓋,飛馬接住周昕交鋒。兩下鼓聲大震,互相鏖戰。忽王朗陣後先亂,一彪軍從背後抄來。朗大驚,急回馬來迎:原來是周瑜與程普引軍刺斜殺來,前後來攻。王朗寡不敵眾,與白虎,周昕,殺條血路,走入城中;拽起弔橋,堅閉城門。
孫策大軍乘勢趕到城下,分佈眾軍,四門攻打。王朗在城中見孫策攻城甚急,欲再出兵決一死戰。嚴白虎曰:「孫策兵勢甚大,足下只宜深溝高壘,堅壁勿出。不消一月,彼軍糧盡,自然退走。那時乘虛掩之,可不戰而破也。」朗依其議,乃固守會稽城而不出。
孫策一連攻了數日,不能成功,乃與眾將計議。孫靜曰:「王朗負固守城,難可卒拔;會稽錢糧,大半屯於查瀆;其地離此數十里,莫若以兵先據其內:所謂攻其無備,出其不意也。」策大喜曰:「叔父妙用,足破賊人矣!」即下令於各門燃火,虛張旗號,設為疑兵,連夜撤圍南去。周瑜進曰:「主公大兵一起,王朗必然出城來趕,可用奇兵勝之。」策曰:「吾今準備了,取城只在今夜。」遂令軍馬起行。
卻說王朗聞報孫策軍馬退去,自引眾人來敵樓上觀望;見城下煙火併起,旌旗不雜,心下遲疑。周昕曰:「孫策走矣,特設此計以疑我耳。可出兵襲之。」嚴白虎曰:「孫策此去,莫非要去查瀆。我令部兵與周將軍追之。」朗曰:「查瀆是我屯糧之所,正須隄防。汝引兵先行,吾隨後接應。」白虎與周昕領五千兵出城追趕。將近初更,離城二十餘里,忽密林裏一鼓響,火把齊明。白虎大驚,便勒馬回走。一將當先攔住,火光中視之,乃孫策也。周昕舞刀來迎,被策一鎗刺死。餘眾皆降。白虎殺條血路,望餘杭而走。
王朗聽知前軍已敗,不敢入城,引部下奔逃海隅去了。孫策復回大軍,乘勢取了城池,安定人民。不隔一日,只見一人將著嚴白虎首級來孫策軍前投獻。策視其人:身長八尺,面方口闊。問其姓名,乃會稽餘姚人:姓董,名襲,字元代。策喜,命為別部司馬。自是東路皆平,令叔孫靜守之,令朱治為吳郡太守,收軍回江東。
卻說孫權與周泰守宣城,忽山賊竊發,四面殺至。時值更深,不及抵敵,泰抱權上馬。賊用刀來砍。泰赤體步行,提刀殺賊,砍殺十餘人。隨後一賊躍馬挺鎗直取周泰,被泰扯住鎗,拖下馬來,奪了鎗馬,殺條血路,救出孫權。餘賊遠遁。周泰身被十二鎗,金瘡發脹,命在須臾。
策聞之大驚。帳下董襲曰:「某曾與海寇相持,身遭數鎗,得會稽一個賢郡吏虞翻薦一醫者,半月而愈。」策曰:「虞翻莫非虞仲翔乎?」襲曰:「然。」策曰:「此賢士也,我當用之。」乃令張昭與董襲同往聘請虞翻。翻至,策優禮相待,拜為功曹,因言及求醫之意。翻曰:「此人乃沛國譙郡人:姓華,名佗,字元化。真當世之神醫也。當引之來見。」
不一日引至。策見其人:童顏鶴髮,飄然有出世之姿;乃待為上賓,請視周泰瘡。佗曰:「此易事耳。」投之以藥,一月而愈。策大喜,厚謝華佗。遂進兵殺除山賊。江南皆平。孫策分撥將士,守把各處隘口;一面寫表申奏朝廷;一面結交曹操;一面使人致書與袁術取玉璽。
卻說袁術暗有稱帝之心,乃回書推託不還;急聚長史楊大將,都督張勳,紀靈,橋蕤,上將雷薄,陳蘭,等三十餘人,商議曰:「孫策借我軍馬起事,今日盡得江東地面,乃不思報本,而反來索璽,殊為無禮。當以何策圖之?」長史楊大將曰:「孫策據長江之險,兵精糧廣,未可圖也。今當先伐劉備,以報前日無故相攻之恨,然後圖取孫策未遲。某獻一計,使備即日就擒。」正是:
不去江東圖虎豹,
卻來徐郡鬥蛟龍。
不知其計若何,且看下文分解。
三國演義 (삼국연의, Sānguóyǎnyì)
三國演義 (Sānguóyǎnyì)
Alternative Names (異名):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三國演義, 三国演义, Sānguóyǎnyì, Romance of Three Kingdoms
저자: 나관중
장르: 역사소설
중국의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14세기에 나관중(羅貫中)이 장회소설(章回小說)의 형식으로 편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정본(定本)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진수(陳壽)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는 천하의 패권(覇權)을 둘러싸고 3국이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618~907)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野談)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960∼1279)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說話人)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話本)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說三分)’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皮影戱)’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話本)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建陽)의 출판업자 우(虞)씨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元)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는 명(明, 1368∼1644) 시대에도 출판되었지만, 야담(野談)과 화본(話本)에 기초해 있었기에 허황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역사적 사실과도 차이가 많았다. 그래서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근간으로 하되,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429년 배송지(裵松之, 372-451)가 이를 보완한 《삼국지주(三國志註)》,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아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삼국지연의》를 편찬하였다.
《삼국지연의》는 후한(後漢) 말부터 위(魏)· 촉(蜀)·오(吳) 삼국의 정립시대(鼎立時代)를 거쳐서 진(晉)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역사를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등 세 인물의 무용(武勇)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모(智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원본(原本)은 전해지지 않으며 명(明)의 가정제(嘉靖帝, 1507~1566) 때인 1522년에 간행된 ‘가정본(嘉靖本)’이 가장 오래된 판본(版本)으로 전해진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란 제목으로 간행된 이 판본은 홍치제(弘治帝, 1470~1505) 때인 1494년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어 ‘홍치본(弘治本)’, 혹은 나관중(羅貫中)의 성을 따서 ‘나본(羅本)’으로도 불린다. 모두 24권(卷) 240절[節, 혹은 칙(則)]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나관중의 원본(原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지연의》는 그 뒤 가정본(嘉靖本)을 근간으로 하면서 문체나 내용이 보완되어 왔으며, 수많은 속본(俗本)들을 낳았다. 명(明) 말기에 이지(李贄, 1527~1602)는 《삼국지연의》에 평을 붙이면서 2개의 절(節)을 하나로 합하여 240절(節)을 120절(節)로 줄였는데, 이를 ‘이탁오평본(李卓吾評本)’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淸)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 때인 1679년(강희18년)에 모성산(毛聲山)과 모종강(毛宗岡) 부자(父子)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기초해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높이고 문체(文體)를 간결하게 다듬어 19권(卷) 120절(節)로 구성된 새로운 판본을 간행하였다. 이를 ‘모본(毛本)’이라고 하는데, 모종강(毛宗崗)의 개정본은 다른 판본을 압도하고 정본(定本)이 되었다. 오늘날 번역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도 대부분 이 ‘모본(毛本)’에 기초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인에게 오랫동안 애독되었고, 그 내용은 연극(演劇)이나 강담(講談) 등으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었다. 관우(關羽)는 민간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제묘(關帝廟)가 곳곳에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삼고초려(三顧草廬)’나 ‘계륵(鷄肋)’, ‘읍참마속(泣斬馬謖)’ 등의 표현이 고사(故事)와 함께 널리 쓰였다.
《삼국지연의》는 한국에서도 조선(朝鮮) 시대부터 매우 폭넓게 읽혔다. 《삼국지연의》는 이미 16세기 초에 조선(朝鮮)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原文)으로 간행되었다. 인조(仁祖, 1595~1649) 때인 1627년(인조 5년)과 숙종(肅宗, 1661~1720) 때에도 출간(出刊)되었다. 《삼국지연의》를 번역(飜譯)하거나 번안(飜案)한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지는데, 이는 사대부(士大夫)만이 아니라 부녀자(婦女子)나 민간(民間)에서도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시조(時調)나 소설(小說), 속담(俗談) 등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고 확산된 것은 이 작품이 충효(忠孝)와 의(義)를 강조하는 조선(朝鮮)의 유교적(儒敎的) 지배이념과 일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에도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번역본을 낳으며 폭넓게 읽혔는데, 1904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최초로 근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1929년에는 양백화(梁白華, 1889~1938)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朴泰遠, 1909~1987)이 ‘모본(毛本)’을 기초로 현대적 번역본을 출간(出刊)한 뒤, 박종화(朴鐘和, 1901~1981), 김구용(金丘庸, 1922~2001) 등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한편 현대에 와서 《삼국지연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우영(高羽榮, 1938~2005)이 만화로 신문에 연재한 작품이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 1935∼2004)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코에이(KOEI)는 1985년 ‘삼국지(三國志, samgugji)’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였다. 그 밖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경영학이나 처세학 등을 논하는 책들도 폭넓게 출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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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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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ernative Names (異名):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三國演義, 三国演义, Sānguóyǎnyì, Romance of Three Kingdoms
저자: 나관중
장르: 역사소설
중국의 위(魏), 촉(蜀), 오(吳) 세 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14세기에 나관중(羅貫中)이 장회소설(章回小說)의 형식으로 편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정본(定本)으로 여겨지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진수(陳壽)의 《삼국지》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는 천하의 패권(覇權)을 둘러싸고 3국이 벌이는 힘과 지혜의 다툼이 워낙 치열하게 펼쳐졌기에 일찍부터 중국인들에게 흥미 있는 이야기로 전해져 왔다. 당(唐, 618~907) 시대에 이미 3국의 이야기가 야담(野談)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으며, 송(宋, 960∼1279) 시대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설화인(說話人)들의 이야기 대본인 화본(話本)으로 정리되고,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당시 곽사구(禱四究)의 ‘설삼분(說三分)’은 매우 유명했으며, 인종(仁宗, 1010~1063) 때에는 3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피영희(皮影戱)’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元, 1271∼1368)의 영종(英宗, 재위 1320~1323) 때, 전래되던 화본(話本)들을 바탕으로 푸젠성(福建省) 젠양(建陽)의 출판업자 우(虞)씨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3권으로 되어 있으며 위에 그림, 아래에 글을 넣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元) 시대에는 이를 바탕으로 많은 희곡이 만들어져 공연되었는데, 종사성(鍾嗣成)의 《녹귀부(錄鬼簿)》에 따르면 그 수가 30~40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는 명(明, 1368∼1644) 시대에도 출판되었지만, 야담(野談)과 화본(話本)에 기초해 있었기에 허황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역사적 사실과도 차이가 많았다. 그래서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은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근간으로 하되,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429년 배송지(裵松之, 372-451)가 이를 보완한 《삼국지주(三國志註)》,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아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삼국지연의》를 편찬하였다.
《삼국지연의》는 후한(後漢) 말부터 위(魏)· 촉(蜀)·오(吳) 삼국의 정립시대(鼎立時代)를 거쳐서 진(晉)이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역사를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등 세 인물의 무용(武勇)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모(智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원본(原本)은 전해지지 않으며 명(明)의 가정제(嘉靖帝, 1507~1566) 때인 1522년에 간행된 ‘가정본(嘉靖本)’이 가장 오래된 판본(版本)으로 전해진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란 제목으로 간행된 이 판본은 홍치제(弘治帝, 1470~1505) 때인 1494년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어 ‘홍치본(弘治本)’, 혹은 나관중(羅貫中)의 성을 따서 ‘나본(羅本)’으로도 불린다. 모두 24권(卷) 240절[節, 혹은 칙(則)]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나관중의 원본(原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지연의》는 그 뒤 가정본(嘉靖本)을 근간으로 하면서 문체나 내용이 보완되어 왔으며, 수많은 속본(俗本)들을 낳았다. 명(明) 말기에 이지(李贄, 1527~1602)는 《삼국지연의》에 평을 붙이면서 2개의 절(節)을 하나로 합하여 240절(節)을 120절(節)로 줄였는데, 이를 ‘이탁오평본(李卓吾評本)’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淸)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 때인 1679년(강희18년)에 모성산(毛聲山)과 모종강(毛宗岡) 부자(父子)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기초해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높이고 문체(文體)를 간결하게 다듬어 19권(卷) 120절(節)로 구성된 새로운 판본을 간행하였다. 이를 ‘모본(毛本)’이라고 하는데, 모종강(毛宗崗)의 개정본은 다른 판본을 압도하고 정본(定本)이 되었다. 오늘날 번역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도 대부분 이 ‘모본(毛本)’에 기초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인에게 오랫동안 애독되었고, 그 내용은 연극(演劇)이나 강담(講談) 등으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었다. 관우(關羽)는 민간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제묘(關帝廟)가 곳곳에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삼국지연의》에서 비롯된 ‘삼고초려(三顧草廬)’나 ‘계륵(鷄肋)’, ‘읍참마속(泣斬馬謖)’ 등의 표현이 고사(故事)와 함께 널리 쓰였다.
《삼국지연의》는 한국에서도 조선(朝鮮) 시대부터 매우 폭넓게 읽혔다. 《삼국지연의》는 이미 16세기 초에 조선(朝鮮)에 전해져 1569년에는 국내에서 원문(原文)으로 간행되었다. 인조(仁祖, 1595~1649) 때인 1627년(인조 5년)과 숙종(肅宗, 1661~1720) 때에도 출간(出刊)되었다. 《삼국지연의》를 번역(飜譯)하거나 번안(飜案)한 작품들도 상당수 전해지는데, 이는 사대부(士大夫)만이 아니라 부녀자(婦女子)나 민간(民間)에서도 폭넓게 읽혔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시조(時調)나 소설(小說), 속담(俗談) 등에서도 《삼국지연의》의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삼국지연의》가 널리 읽히고 확산된 것은 이 작품이 충효(忠孝)와 의(義)를 강조하는 조선(朝鮮)의 유교적(儒敎的) 지배이념과 일치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이후에도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번역본을 낳으며 폭넓게 읽혔는데, 1904년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최초로 근대적 활자본이 간행되었고, 1929년에는 양백화(梁白華, 1889~1938)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新報)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박태원(朴泰遠, 1909~1987)이 ‘모본(毛本)’을 기초로 현대적 번역본을 출간(出刊)한 뒤, 박종화(朴鐘和, 1901~1981), 김구용(金丘庸, 1922~2001) 등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양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한편 현대에 와서 《삼국지연의》는 영화나 컴퓨터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우영(高羽榮, 1938~2005)이 만화로 신문에 연재한 작품이 1979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橫山光輝, 1935∼2004)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코에이(KOEI)는 1985년 ‘삼국지(三國志, samgugji)’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였다. 그 밖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경영학이나 처세학 등을 논하는 책들도 폭넓게 출간되고 있다.
관련 고사성어
第015回
太史慈酣鬥小霸王 孫伯符大戰嚴白虎
桃園結義(도원결의) |
第060回
張永年反難楊修 龐士元議取西蜀
過目不忘(과목불망) |
참조항목
三國志(Sānguózhì) |
Labels:
Chinese classic novels,
Historical novels,
S,
Sān,
Sānguóyǎnyì,
Three Kingdoms,
ㅅ,
삼,
삼국연의,
三,
三國演義
三國演義 (Sānguóyǎnyì)
三國演義(Sānguóyǎnyì)
Alternative Names (異名):
三國演義, 三国演义, Sānguóyǎnyì, Romance of Three Kingdoms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traditional Chinese: 三國演義; simplified Chinese: 三国演义; pinyin: sānguó yǎnyì), written by Luo Guanzhong in the 14th century, is a Chinese historical novel based upon events in the turbulent years near the end of the Han Dynasty and the Three Kingdoms era, starting in 168 and ending with the reunification of the land in 280.
It is acclaimed as one of the Four Great Classical Novels (四大名著) of Chinese literature, with a grand total of 800,000 words, 1191 characters, and 120 chapters.
Alternative Names (異名):
三國演義, 三国演义, Sānguóyǎnyì, Romance of Three Kingdoms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traditional Chinese: 三國演義; simplified Chinese: 三国演义; pinyin: sānguó yǎnyì), written by Luo Guanzhong in the 14th century, is a Chinese historical novel based upon events in the turbulent years near the end of the Han Dynasty and the Three Kingdoms era, starting in 168 and ending with the reunification of the land in 280.
It is acclaimed as one of the Four Great Classical Novels (四大名著) of Chinese literature, with a grand total of 800,000 words, 1191 characters, and 120 chapters.
Labels:
Chinese classic novels,
Historical novels,
S,
Sān,
Sānguóyǎnyì,
Three Kingdoms,
ㅅ,
삼,
삼국연의,
三,
三國演義
三戒 (삼계, sānjiè) 柳宗元 (유종원)
三戒(삼계)
柳宗元(유종원)
三戒(sānjiè)
영주에 귀양살이하던 시절에 지어진 작품으로, 세 편의 우화를 통해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지적하고 있다.이 세 편의 우화는 사슴 당나귀 쥐라는 세 가지 동물의 생활 비극을 빌어, 총애를 믿고 거만하며 외세에 의지하여 잘난 체하거나, 겉으로는 방대하고 강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빈 채 무능하거나, 묵은 작태에 길들여져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다가 패망하게 되는 세 유형의 인간 군상을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柳宗元(유종원)
三戒(sānjiè)
영주에 귀양살이하던 시절에 지어진 작품으로, 세 편의 우화를 통해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지적하고 있다.이 세 편의 우화는 사슴 당나귀 쥐라는 세 가지 동물의 생활 비극을 빌어, 총애를 믿고 거만하며 외세에 의지하여 잘난 체하거나, 겉으로는 방대하고 강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빈 채 무능하거나, 묵은 작태에 길들여져 제멋대로 횡포를 부리다가 패망하게 되는 세 유형의 인간 군상을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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