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書 (Book of Han) 班固 (Ban Gu)
Book of Han (漢書)
The Book of Han, Hanshu or History of the Former Han Dynasty (simplified Chinese: 汉书 or 前汉书; traditional Chinese: 漢書 sometimes, 前漢書; pinyin: Qián Hànshū; Wade–Giles: Ch'ien Han Shu) is a classical Chinese history finished in AD 111, covering the history of China under the Western Han from 206 BC to 25 AD. Thus it is also sometimes called the Book of Former Han. The work was composed by Ban Biao, Ban Gu, and Ban Zhao. A second work, the Book of the Later Han covers the Eastern Han period from 25 to 220, and was composed in the fifth century by Fan Ye (398–445). Various scholars have estimated that the earliest material covered in the book dates back to between 206 and 202 BC. The book also contains the first written historical mention of Japan.
Quotes·Quotations from Book of Han (漢書) by Ban Gu (班固)
Wine
¶ 酒百藥之長
The wine is the best of all medicines.
http://en.wikipedia.org/wiki/Book_of_Han
http://en.wikipedia.org/wiki/Ban_Gu
韓非子 (한비자) 韓非 (한비) 036 難一 (난일)
韓非子(한비자) 韓非(한비)
外儲說右下(외제설우하) 難一(난일) 難二(난이)
1 難一: 晉文公將與楚人戰,召舅犯問之,曰:“吾將與楚人戰,彼眾我寡,為之奈何?”舅犯曰:“臣聞之,繁禮君子,不厭忠信;戰陣之閒,不厭詐偽。
外儲說右下(외제설우하) 難一(난일) 難二(난이)
1 難一: 晉文公將與楚人戰,召舅犯問之,曰:“吾將與楚人戰,彼眾我寡,為之奈何?”舅犯曰:“臣聞之,繁禮君子,不厭忠信;戰陣之閒,不厭詐偽。
韓非子 (한비자) 韓非 (한비) 022 說林上 (설림상)
韓非子(한비자) 韓非(한비)
喻老(유노) 說林上(설림상) 說林下(설림하)
1 說林上: 湯以伐桀,而恐天下言己為貪也,因乃讓天下於務光。而恐務光之受之也,乃使人說務光曰:“湯殺君而欲傳惡聲于子,故讓天下於子。”務光因自投於河。
喻老(유노) 說林上(설림상) 說林下(설림하)
1 說林上: 湯以伐桀,而恐天下言己為貪也,因乃讓天下於務光。而恐務光之受之也,乃使人說務光曰:“湯殺君而欲傳惡聲于子,故讓天下於子。”務光因自投於河。
韓非子 (한비자) 韓非 (한비)
韓非子(한비자) 韓非(한비)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한 한비(韓非:BC 280?∼BC 233)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
55편 20책에 이르는 대저(大著)로, 원래 《한자(韓子)》라 불리던 것을 후에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도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혼동을 막기 위하여 지금의 책이름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 책은 한비가 죽은 다음 전한(前漢) 중기(BC 2세기 말) 이전에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거의가 법의 지상(至上)을 강조하는데, 55편을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이 성질이 다른 6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① 한비의 자저(自著)로 추정되는 <오두(五蠹)> <현학(顯學)> <고분(孤憤)> 등이다. 이들 논저는 먼저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기우는 것으로 설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력(無力)한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정치를 논할 기초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세상은 경제적 원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진전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립된 정책이 반드시 현세에 적용되지는 않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가(儒家)나 묵가(墨家)의 주장은 인간사회를 너무 좋도록 관찰하여 우연성에만 의존하는 공론(空論)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러한 공론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끊임없이 시세(時世)에 즉응(卽應)하는 법을 펴고, 관리들의 평소의 근태(勤怠)를 감독하여 상벌을 시행하고 농민과 병사를 아끼고 상공(商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군주는 측근·중신·유세가(遊說家)·학자·민중들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② 한비 일파의 강학(講學) ·토론으로 추정되는 편(編)으로, <난(難)> <난일(難一)∼난사(難四)> <난세(難勢)> <문변(問辨)> <문전(問田)> <정법(定法)> 등이 있다. 사상 내용은 한비의 사상과 거의 같다. 이 중에서 주목할 것은 <난세>와 <정법>으로, 유가의 덕치론(德治論)은 물론 법가(法家)에 속하는 신자(愼子) ·신자(申子) ·상자(商子)의 설까지도 비판하고 수정한다. 이 책을 법가학설의 집대성이라고 일컫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③ 한비 학파가 전한 설화집 <설림(說林)> <내외저설(內外儲說)> <십과(十過)> 등의 제편(諸編). 상고(上古)로부터의 설화 300가지 정도를 독특한 체계에 의하여 배열하고, 그들 이야기의 흥미를 통하여 법가사상을 선전하였다. 소화(笑話)의 유(類)도 섞여 있으나 고대 단편소설로서의 측면도 지닌다.
④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대(漢代)까지의 한비 후학(後學)들의 정론(政論)으로 추정되는 제편(諸編). 편수(編數)는 가장 많으며 그 중 <유도(有度)> <이병(二柄)> <팔간(八姦)> 등은 오래된 것이고, <심도(心度)> <제분(制分)> 등은 새로운 설이다. 후학들의 주장에서 한비의 사상은 현저하게 조직화되었고, 특히 군신통어(群臣統御:刑名參同)나 법의 운용(運用:法術)에 관한 술책이 세밀하게 고찰되었다. 그러나 군권강화(君權强化)와 엄벌주의를 주장하는 점만이 농후하고, 법의 최고 목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⑤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한비 후학들의 논저인 <주도(主道)> <양각(揚搉)> <해로(解老)> <유로(喩老)> 등의 4편. 유가의 덕치를 부정하고 법치를 제창한 법가는, 덕치와 법치를 모두 부정하는 도가와는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육반(六反)> <충효> 등에서는 강력한 반대를 나타낸다. 그러나 군주는 공평무사를 본지(本旨)로 하여 신하(臣下)에 대하여는 인간적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심술(心術)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법가 중에도 도가의 허정(虛靜)의 설을 도입한 일파가 있다. 위의 4편은 이들 일파의 논저로서, 전(前) 편은 정론(政論)이고, 후 2편은 편명 그대로 《노자(老子)》의 주석(注釋) 또는 해설편이다.
⑥ 한비 학파 이외의 논저인 <초견진(初見秦)> <존한(存韓)> 등 2편 모두 한비의 사적(事蹟)에 결부시켜 책 첫머리에 편입되어 있으나 전자는 유세가의 작품이고, 후자는 한비의 작품을 모방한 상주문(上奏文)이 포함된 것으로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한비와 그 학파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편견적인 인간관 위에 성립된 것으로 지적되며, 특히 유가로부터는 애정을 무시하는 냉혹하고도 잔인한 술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확실히 급소를 찌르는 적평(適評)이라 하겠으나, 그들이 유가·법가·명가(名家)·도가 등의 설을 집대성하여, 법을 독립된 고찰대상으로 삼고 일종의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의하여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진 ·한의 법형제도(法刑制度)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점, 또 감상(感傷)을 뿌리친 그들의 간결한 산문이나 인간의 이면을 그린 설화가 고대문학의 한 전형을 이룬 점에 있어 커다란 문화적 사명을 다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러 가지 간행본이 있으나 절강서국(浙江書局)의 22자본(子本)이 좋은 간본이라고 한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한 한비(韓非:BC 280?∼BC 233)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
55편 20책에 이르는 대저(大著)로, 원래 《한자(韓子)》라 불리던 것을 후에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도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혼동을 막기 위하여 지금의 책이름으로 통용되어 왔다.
이 책은 한비가 죽은 다음 전한(前漢) 중기(BC 2세기 말) 이전에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거의가 법의 지상(至上)을 강조하는데, 55편을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이 성질이 다른 6군(群)으로 나눌 수 있다.
① 한비의 자저(自著)로 추정되는 <오두(五蠹)> <현학(顯學)> <고분(孤憤)> 등이다. 이들 논저는 먼저 인간의 일반적 성질은 타산적이고 악에 기우는 것으로 설혹 친한 사이에 애정이 있다 해도 그것은 무력(無力)한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정치를 논할 기초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이 세상은 경제적 원인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진전하기 때문에 과거에 성립된 정책이 반드시 현세에 적용되지는 않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가(儒家)나 묵가(墨家)의 주장은 인간사회를 너무 좋도록 관찰하여 우연성에만 의존하는 공론(空論)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러한 공론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끊임없이 시세(時世)에 즉응(卽應)하는 법을 펴고, 관리들의 평소의 근태(勤怠)를 감독하여 상벌을 시행하고 농민과 병사를 아끼고 상공(商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군주는 측근·중신·유세가(遊說家)·학자·민중들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② 한비 일파의 강학(講學) ·토론으로 추정되는 편(編)으로, <난(難)> <난일(難一)∼난사(難四)> <난세(難勢)> <문변(問辨)> <문전(問田)> <정법(定法)> 등이 있다. 사상 내용은 한비의 사상과 거의 같다. 이 중에서 주목할 것은 <난세>와 <정법>으로, 유가의 덕치론(德治論)은 물론 법가(法家)에 속하는 신자(愼子) ·신자(申子) ·상자(商子)의 설까지도 비판하고 수정한다. 이 책을 법가학설의 집대성이라고 일컫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③ 한비 학파가 전한 설화집 <설림(說林)> <내외저설(內外儲說)> <십과(十過)> 등의 제편(諸編). 상고(上古)로부터의 설화 300가지 정도를 독특한 체계에 의하여 배열하고, 그들 이야기의 흥미를 통하여 법가사상을 선전하였다. 소화(笑話)의 유(類)도 섞여 있으나 고대 단편소설로서의 측면도 지닌다.
④ 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대(漢代)까지의 한비 후학(後學)들의 정론(政論)으로 추정되는 제편(諸編). 편수(編數)는 가장 많으며 그 중 <유도(有度)> <이병(二柄)> <팔간(八姦)> 등은 오래된 것이고, <심도(心度)> <제분(制分)> 등은 새로운 설이다. 후학들의 주장에서 한비의 사상은 현저하게 조직화되었고, 특히 군신통어(群臣統御:刑名參同)나 법의 운용(運用:法術)에 관한 술책이 세밀하게 고찰되었다. 그러나 군권강화(君權强化)와 엄벌주의를 주장하는 점만이 농후하고, 법의 최고 목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⑤ 도가(道家)의 영향을 받은 한비 후학들의 논저인 <주도(主道)> <양각(揚搉)> <해로(解老)> <유로(喩老)> 등의 4편. 유가의 덕치를 부정하고 법치를 제창한 법가는, 덕치와 법치를 모두 부정하는 도가와는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육반(六反)> <충효> 등에서는 강력한 반대를 나타낸다. 그러나 군주는 공평무사를 본지(本旨)로 하여 신하(臣下)에 대하여는 인간적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심술(心術)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법가 중에도 도가의 허정(虛靜)의 설을 도입한 일파가 있다. 위의 4편은 이들 일파의 논저로서, 전(前) 편은 정론(政論)이고, 후 2편은 편명 그대로 《노자(老子)》의 주석(注釋) 또는 해설편이다.
⑥ 한비 학파 이외의 논저인 <초견진(初見秦)> <존한(存韓)> 등 2편 모두 한비의 사적(事蹟)에 결부시켜 책 첫머리에 편입되어 있으나 전자는 유세가의 작품이고, 후자는 한비의 작품을 모방한 상주문(上奏文)이 포함된 것으로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한비와 그 학파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편견적인 인간관 위에 성립된 것으로 지적되며, 특히 유가로부터는 애정을 무시하는 냉혹하고도 잔인한 술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확실히 급소를 찌르는 적평(適評)이라 하겠으나, 그들이 유가·법가·명가(名家)·도가 등의 설을 집대성하여, 법을 독립된 고찰대상으로 삼고 일종의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의하여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진 ·한의 법형제도(法刑制度)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점, 또 감상(感傷)을 뿌리친 그들의 간결한 산문이나 인간의 이면을 그린 설화가 고대문학의 한 전형을 이룬 점에 있어 커다란 문화적 사명을 다하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러 가지 간행본이 있으나 절강서국(浙江書局)의 22자본(子本)이 좋은 간본이라고 한다.
鶴林玉露 (학림옥로) 羅大經 (나대경)
鶴林玉露(학림옥로) 羅大經(나대경)
시화(詩話)ㆍ어록(語錄)ㆍ소설(小說)의 문체(文體)로 문인(文人)ㆍ도학자(道學者)ㆍ산인(山人)의 말을 실어, 주희(朱憙)ㆍ장재(張載) 등(等)의 말을 인용(引用)하고, 구양수(歐陽修)ㆍ소동파(蘇東坡)의 글을 찬양(讚揚)한 책(冊). 천(天)ㆍ지(地)ㆍ인(人)의 세 부로 분류(分類). 송(宋)나라의 나대경(羅大經)이 지음. 1248~1252년에 완성(完成). 18권
관련 한자어
半部論語(반부논어) 자신의 지식을 겸손하게 이르거나 학습의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
水滴穿石(수적천석) 작은 노력이라도 끊임없이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
繩鋸木斷水滴石穿(승거목단수적석천) 꾸준히 노력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 성공할 수 있음을 비유 |
寸鐵殺人(촌철살인)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①간단한 경구로 사람의 급소를 찔러 감동시킴 ②또는 사물(事物)의 급소(急所)를 찌름의 비유(比喩ㆍ譬喩) |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봄은 나뭇가지 끝에 이미 무르익어 있다'라는 뜻으로,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음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때가 무르익어 절정에 이름을 비유하는 말 |
시화(詩話)ㆍ어록(語錄)ㆍ소설(小說)의 문체(文體)로 문인(文人)ㆍ도학자(道學者)ㆍ산인(山人)의 말을 실어, 주희(朱憙)ㆍ장재(張載) 등(等)의 말을 인용(引用)하고, 구양수(歐陽修)ㆍ소동파(蘇東坡)의 글을 찬양(讚揚)한 책(冊). 천(天)ㆍ지(地)ㆍ인(人)의 세 부로 분류(分類). 송(宋)나라의 나대경(羅大經)이 지음. 1248~1252년에 완성(完成). 18권
관련 한자어
半部論語(반부논어) 자신의 지식을 겸손하게 이르거나 학습의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
水滴穿石(수적천석) 작은 노력이라도 끊임없이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말. |
繩鋸木斷水滴石穿(승거목단수적석천) 꾸준히 노력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 성공할 수 있음을 비유 |
寸鐵殺人(촌철살인) 한 치밖에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①간단한 경구로 사람의 급소를 찔러 감동시킴 ②또는 사물(事物)의 급소(急所)를 찌름의 비유(比喩ㆍ譬喩) |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봄은 나뭇가지 끝에 이미 무르익어 있다'라는 뜻으로,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음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때가 무르익어 절정에 이름을 비유하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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