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四史(이십사사) | 二十五史(이십오사) |
二十四史(èrshísìshǐ) | 二十五史(èrshíwǔshǐ) |
24사. 지난날 정사(正史)로 일컬어지던 24종의 기전체 역사책. 24사에 신원사(新元史)를 추가하여 25사라고 부른다.
酉陽雜俎 (유양잡조) 段成式 (단성식) 卷16 廣動植之一
酉陽雜俎(유양잡조) 段成式(단성식)
卷15 卷16 廣動植之一 卷17
廣動植之一
(並序)
成式以天地間所化所產,突而旋成形者樊然矣,故《山海經》、《爾雅》所不能究。因拾前儒所著,有草木禽魚未列經史,已載事未悉者,或接諸耳目,簡編所無者,作《廣動植》,冀掊土培丘陵之學也。
卷15 卷16 廣動植之一 卷17
廣動植之一
(並序)
成式以天地間所化所產,突而旋成形者樊然矣,故《山海經》、《爾雅》所不能究。因拾前儒所著,有草木禽魚未列經史,已載事未悉者,或接諸耳目,簡編所無者,作《廣動植》,冀掊土培丘陵之學也。
游仙窟 (유선굴) 張鷟 (장작)
游仙窟(유선굴) 張鷟(장작)
중국 당대(唐代)의 소설.
1권. 장작(張鷟:660?∼740) 작. 작자가 풍부한 재능을 가지면서도 사회의 제약에 묶여서 발휘하지 못하는 분한 마음을, 당나라와 토번(吐蕃:티베트) 사이의 전운(戰雲)이 감도는 변경(邊境:甘肅省 寧縣)의 임지에서,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자 도사(道士)나 창기(娼妓)와의 사랑으로 연소시켰던 일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것이다.
내용은 주인공 장생(張生)이 적석산(積石山)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하룻밤을 지내게 된 신선의 굴에서 최십랑(崔十娘)과 왕오수(王五嫂)의 환대를 받는다는 이야기이며, 유선굴이란 미인의 저택이라는 뜻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산문에는 변문(騈文)을 쓰고, 대화에는 운문을 쓰고 있으며, 구어체의 어휘를 많이 구사한 화려한 글이다. 주고받는 시는 오언(五言)의 사구(四句)와 팔구, 칠언(七言)의 사구, 오언과 칠언의 장구(長句) 등 다채로우며, 변문에 많은 시를 섞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형식은, 전기(傳奇) 형식에 변문의 영향이 가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 | 장작 |
장르 | 소설 |
발표연도 | 중국 당대(唐代) |
중국 당대(唐代)의 소설.
1권. 장작(張鷟:660?∼740) 작. 작자가 풍부한 재능을 가지면서도 사회의 제약에 묶여서 발휘하지 못하는 분한 마음을, 당나라와 토번(吐蕃:티베트) 사이의 전운(戰雲)이 감도는 변경(邊境:甘肅省 寧縣)의 임지에서,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자 도사(道士)나 창기(娼妓)와의 사랑으로 연소시켰던 일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것이다.
내용은 주인공 장생(張生)이 적석산(積石山)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하룻밤을 지내게 된 신선의 굴에서 최십랑(崔十娘)과 왕오수(王五嫂)의 환대를 받는다는 이야기이며, 유선굴이란 미인의 저택이라는 뜻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산문에는 변문(騈文)을 쓰고, 대화에는 운문을 쓰고 있으며, 구어체의 어휘를 많이 구사한 화려한 글이다. 주고받는 시는 오언(五言)의 사구(四句)와 팔구, 칠언(七言)의 사구, 오언과 칠언의 장구(長句) 등 다채로우며, 변문에 많은 시를 섞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형식은, 전기(傳奇) 형식에 변문의 영향이 가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圍棋十訣 (위기십결)
위기십결(圍棋十訣)
바둑을 두는 데 필요한 열 가지 요결을 북송(北宋)의 반신수(潘愼修)가 지어 태종(太宗)에게 헌상한 것.
부득탐승(不得貪勝), 입계의완(入界宜緩), 공피고아(攻彼顧我), 기자쟁선(棄子爭先), 사소취대(捨小就大), 봉위수기(逢危須棄), 신물경속(愼勿輕速), 동수상응(動須相應), 피강자보(彼强自保), 세고취화(勢孤取和)로 되어 있다.
바둑을 두는 데 필요한 열 가지 요결을 북송(北宋)의 반신수(潘愼修)가 지어 태종(太宗)에게 헌상한 것.
부득탐승(不得貪勝), 입계의완(入界宜緩), 공피고아(攻彼顧我), 기자쟁선(棄子爭先), 사소취대(捨小就大), 봉위수기(逢危須棄), 신물경속(愼勿輕速), 동수상응(動須相應), 피강자보(彼强自保), 세고취화(勢孤取和)로 되어 있다.
元朝秘史 (원조비사)
元朝秘史(원조비사)
몽골 역사서. 원(元)나라 태조(太祖)ㆍ태종(太宗) 양조(兩朝)의 실록(實錄). 태종조(太宗朝)의 편. 편자는 자세하지 않음. 정속(正續) 12권. 몽고글로 된 원본(原本)은 전(傳)하지 않으며, 명(明)나라 홍무 초년에 한문(漢文)으로 번역(飜譯)한 것이 있음
성립연대는 13세기 중기(1257년 이후)이고, 저자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위구르식의 몽골글자로 쓰여졌으나, 몽골 어로 된 원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으며 1380년대 명나라 홍무(洪武) 초년에 한자로 음역되고 각 권으로 나누어 진 것이 젼해진다. 각 단어 오른쪽에 중국어로 의미를 풀어 놓고, 각 절마다 그 끝에 중국어 번역문이 덧붙여져있다. 책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고 한다.
북아시아 유목민족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로서는 최고(最古)로, 내용은 몽골족(族)과 칭기즈칸의 선조에 대한 전승(傳承)·계보, 칭기즈칸의 일생과 태종[太宗]의 치세를 기록한 것으로, 몽골제국 성립시기 및 초기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몽골족이 서사시적인 수법을 많이 사용하여 그들의 언어로 기록한 문헌이므로, 문학서와 중세 몽골어의 연구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몽골 역사서. 원(元)나라 태조(太祖)ㆍ태종(太宗) 양조(兩朝)의 실록(實錄). 태종조(太宗朝)의 편. 편자는 자세하지 않음. 정속(正續) 12권. 몽고글로 된 원본(原本)은 전(傳)하지 않으며, 명(明)나라 홍무 초년에 한문(漢文)으로 번역(飜譯)한 것이 있음
성립연대는 13세기 중기(1257년 이후)이고, 저자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위구르식의 몽골글자로 쓰여졌으나, 몽골 어로 된 원본은 오늘날 전하지 않으며 1380년대 명나라 홍무(洪武) 초년에 한자로 음역되고 각 권으로 나누어 진 것이 젼해진다. 각 단어 오른쪽에 중국어로 의미를 풀어 놓고, 각 절마다 그 끝에 중국어 번역문이 덧붙여져있다. 책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고 한다.
북아시아 유목민족에 의해 편찬된 역사서로서는 최고(最古)로, 내용은 몽골족(族)과 칭기즈칸의 선조에 대한 전승(傳承)·계보, 칭기즈칸의 일생과 태종[太宗]의 치세를 기록한 것으로, 몽골제국 성립시기 및 초기의 역사에 대한 중요한 사료이다. 또한 몽골족이 서사시적인 수법을 많이 사용하여 그들의 언어로 기록한 문헌이므로, 문학서와 중세 몽골어의 연구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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